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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외국인①] ‘미나리’가 쏘아올린 인종차별…우리는 투명할까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03.14 13:00
수정 2021.03.14 10:19

1988년 '시커먼스' 올림픽 때문에 폐지

'비정상회담' 외국인 예능의 진화

"동남아권 가족은 다문화, 서구권 가족은 글로벌”

한국에서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는 '미나리'지만, 78회 골든글로브 외국어 시상식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B와 배급사 A24가 참여한 미국영화인데도 영어가 50%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상했지만, 여전히 그 끝맛은 개운치 않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과 여론도 해외 언론과 함께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미나리'를 바라본 골든글로브의 잘못된 시선을 탓하기 전에, 국내 미디어에서 외국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국내 미디어에서 외국인들을 흉내내는 역사는 길다. 과거 1987년 개그 듀오 시커먼스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Run D.M.C의 노래 'You Be Illin'의 비트에 대사를 리듬에 맞춰 랩처럼 선보였다. 이들은 매회 흑인 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착용한 채 등장해 웃음을 줬다. 이 때만 해도 국내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았다. 흑인을 향해 '검둥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혼혈 아이에게 '튀기'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이후 시커먼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폐지됐다. 전 세계 국가의 행사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최하는 만큼, 외국인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도록 정비를 해나갔다.


이봉원은 2010년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당시 시커먼스 폐지에 대해 "서울 올림픽 때문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흑인들이 올텐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셔서 종영하게 됐다"고 설명하며 "아시안게임 때는 흑인들이 올 일 없지 않았냐. 그래서 그때는 괜찮다가, 올림픽 때 없어진 것"이라 말했다. 이 발언은 2010년까지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큰 자각을 못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서양인이 동양인을 향해 눈을 찢는 제스처, 일본인의 한국인 차별에 대해서 분개해도 정작 우리가 행하고 있는 차별적 행위에는 둔감했다.


이 행위가 문제라는 걸 제대로 인지한 시기는 2017년이다. 홍현희가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흑인 분장을 우스꽝스럽게 하고 나와 뭇매를 맞았다. 마마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콘서트에서 브로노 마스의 'Uptown funk'를 패러디한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때 마마무 멤버들이 어두운 피부를 지닌 브루노 마스를 패러디 하기 위해 얼굴에 까만 칠을 했다. 이 영상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인종 차별을 했다고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들이 악의를 품고 흑인을 비하한 건 아니지만, 단순한 웃음을 주기 위해 흑인 분장을 택한 것이 문제다. 특정 인종이 받은 차별과 상처, 인종의 특징을 까만 피부와 두꺼운 입술 등으로 단순화 시키면 인종에 대한 고장관념만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무지의 결과였다. 한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역풍을 맞자 방송가는 이를 학습 삼아 외향을 희화화 하는 것을 더 이상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다.


외국인을 웃음으로 소비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려한 시도도 물론 있었다. 과거 KBS2 '1박 2일'은 한국에서 거주중인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을 대상으로 함께 강릉여행으로 떠났다. 제작진은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그들의 고향을 방문해 영상편지를 보여줬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부 출연진들의 가족을 한국에 초청해 호평 받았다.


이제는 다양한 문화권을 수용해야 한다는 시선이 밑받침이 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례로 JTBC '비정상회담'은 세계 공통으로 여겨지는 문제나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가져와 다른 나라에서 자란 각자의 관점에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방송에서 외국인을 활용할 때 어설픈 한국어 구사나 김치를 먹는 모습 등을 소비했던 예능 방송의 진화였다.


영화도 인종차별, 다문화를 주제로 만들어졌다. 이한 감독의 '완득이', 육상효 감독의 '방가방가', 독립 영화 중에서도 진광교 감독의 '할머니는 1학년'이 다문화 가정 자녀,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자 등을 다루며 더불어 사는 세계를 그려냈다.


이제 문제는 '대상'이었다. 우리가 외국인을 평가하는 대상은 늘 아프리카권이나 동남아시아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평가받고 싶어하는 대상은 유럽이나 미국이었다. tvN '국경 없는 포차'는 한국의 정을 듬뿍 실은 포장마차가 국경을 넘어 해외로 가서 현지 사람들에게 한국의 스트리트 푸드와 포차의 정을 나누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프랑스 파리에 1호점, 덴마크 코펜하겐 2호점, 프랑스 도빌에 3호점을 내고 영업했다. 시청자들은 우리나라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드는 서양인들의 모습을 보고 좋아했다.


'윤식당' 역시 시즌1은 인도네시아 룸붐, 시즌2는 스페인 가라치코였다. 시즌1의 인도네시아는 아시아권이지만 룸붐은 관광지로 많은 유럽, 호주인들이 주로 여행자로 머물다 가는 곳이다. '윤식당' 역시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 음식에 감탄하는 모습을 반복해 보여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포맷을 바꿔 국내에서 하숙집을 운영해 외국인 손님을 받고 있는 '윤스테이'는 1일째 영업날에는 네덜란드, 호주, 미국, 우크라이나, 네팔, 2일 째에는 영국, 이란, 3일 째에는 UN 산하 기구 '녹색기후기금'에서 일하고 있는 다국적 단체(독일,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이탈리아, 부르키나파소), 사우디아라비아인 등이 출연했다. 서구권 출연자 비율이 월등히 높다.


한국에 거주 중인 한 말레이시아인은 "한국 프로그램에서 동남아권 가족은 다문화라고 쓰고 서구권가족은 글로벌이라고 하는 걸 종종 봤다. 인종 차별 의도나 악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방송에서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다문화와 글로벌이란 말이 또 다른 차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남아 사람들은 도와줘야 하는, 안타까운 존재로 바라보면서 서양인들은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실생활에서도 이것 역시 차별이란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가난해서 돈을 벌기 위해 왔다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꿈을 이루기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고 전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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