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모 성희롱으로 본 진보좌파 정치인들의 양면
입력 2021.03.02 08:30
수정 2021.03.02 16:53
도덕적 우월감, 대중적 인기가 위력에 의한 성범죄 쉽게 이끌어
젊은 여성 직원들 침묵 거부…정치 끝내는 사람들 계속 나올 것
지난 주말 뉴욕 타임스에 뉴욕 주지사 쿠오모의 성희롱을 폭로하는 기사가 떴을 때, 필자의 머리에 맨 먼저 떠오른 건 그가 민주당 소속이라는 사실이었다.
성범죄와 정치 진영이 상관 관계를 갖는 게 결코 아닐진대, 가해자의 정파부터 가리는 건 정치적 양극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국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민주당 소속 유명 단체장들이 연달아 비서 성폭력 문제로 정치생명이 다하고 유명을 달리한 경우까지 발생했기에 더욱 ‘민주당’이라는 이름표가 도드라진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반박할 것이다. 공화당원인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보라고. 그는 9.11 테러 수습의 영웅이었다가 트럼프 측근 변호사가 되더니 그의 근거 없는 대선 부정 소송전 선두에 나서 이미지가 망가졌다. 최근에는 호텔에서 어느 젊은 여성을 만나는 함정에 걸려들어 침대 위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바지를 반쯤 벗고 있는 사진이 찍혀 망신도 당했다.
그는 또 얼마 전 방송에 나와 한국계 여자 프로 골프 선수 미셸 위 등과 라운드한 얘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속옷이 비친 에피소드로 낄낄거려 완전히 76세 추물로 굴러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천박한 유명인들의 말로가 이렇게 처참하다.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는 이탈리아계로 63세다. 그의 아버지가 그 유명한 마리오 쿠오모인데, 뉴욕 주지사 3선에 대통령 후보였다. 그래서 쿠오모 하면 직업이 뉴욕 주지사 같고 대통령 후보 같다. 아들 쿠오모도 차기 민주당 대선 후보로 예상됐던 인물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한 도지사와 시장이 떠오른다. 그들도 다음 대권에 도전할 것으로 자타가 공인한 유력 정치인들이었고, 인물 이념 식견 언변 등 모든 면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영웅은 호색(好色)이고 남자는 무엇을 조심해야 한다는 옛말이 전혀 틀리지 않는다.
쿠오모는 J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의 딸 케리 케네디와 결혼했으나(두 집안은 미국 정가에서 드문 가톨릭이다) 2005년 공식 이혼했다. 그리고 방송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 샌드라 리와 살았다. 그녀는 자신보다 거의 20살 젊은 미인이었는데, 1년 반 전에 헤어졌다.
그래서 “외롭다” “주 청사 소재지 현지 여자친구가 필요하다”라는 등의 말을 하며 이번 고발자 샬럿 베넷(Charlotte Bennett) 보좌관(25)에게 추근댔다. 베넷은 그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해 낳은 세 딸 중 둘과 같은 나이로 그 딸들과 고등학교 대항전에서 축구 시합을 했을 만큼 막내딸 같은 어린 여성이다.
그는 딸 같은 직원에게 “나이 많은 남자와 지내(잠자)본 적 있느냐?” “나는 22세 이상이면 연애 할(같이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는 등의 성적 사생활에 관해 묻고 자신의 성에 관한 생각을 늘어놓아 불편하게 하고 모욕을 느끼게 했다.
베넷은 쿠오모의 이런 말들을 자신과 자고 싶다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이 사실을 친구들과 부모에게 알렸고, 주지사 비서실장과 법률 고문에게도 전해 다른 부서로 인사 이동됐다. 잠시 안정되고 새 일에 만족했으나 끝내 극복하지 못해 인근 지자체 정부로 직장을 옮긴 지 얼마 후 뉴욕 타임스 기자를 만났다.
쿠오모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기가 치솟은, 트럼프 망나니 행동 반사효과 수혜자다. 그의 남동생 크리스 쿠오모는 CNN 주요 진행자 중 한 사람이다. 동생과 함께 방송에서 한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발언과 제스처는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호감을 얻을 정도였다.
필자는 온라인에서 지난해 팬데믹 초기 쿠오모 형제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한국 SNS 이용자들의 커멘트들을 보고 약간 놀란 적이 있다. 미국 대통령도 아니고 주지사가 이렇게 유명하고 지지를 받나...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은 방송과 진영으로 풀면 이해가 되는 현상이었다. CNN과 민주당이 그 열쇠 단어들이다.
전도가 유망한 단체장들, 특히 젊은 사람들과 여성, 약자 계층에서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진보좌파 소속 정당에서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까? 통계적인 사실은 아니지만, 언론 보도를 통한 스캔들 빈도로 보면 보수우파보다 더 잦은 것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그들의 도덕적 우월감에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만인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흠모한다는 착각 속에 있기 쉬운 그들이다. 그래서 재선이나 3선 단체장들이 흔히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국이 그랬고 쿠오모도 10년째 주지사다.
공화당 사람들은, 시대가 달라져 진보좌파 지지 인구가 불균형하게 늘어난 요즘은 최소한, 그렇게 대담하게 아래 여성 직원에게 성희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눈치가 보여서도 나쁜 짓을 못 한다. 인기가 타락과 추락의 첩경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또 소속 정당이 표방하는 대로 온갖 진보적이고 평등한 주장을 펼치는 데는 선수들이다. 한국의 모모 인사들과 쿠오모가 대표적인 양면(兩面)의 주인공들이다. 쿠오모는 여성평등법의 의회 통과에 앞장섰으며 “투쟁하는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경의를 표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러나 주지사실에서는 여성 보좌진에게 “연애할 때 한 번에 한 사람씩하고만 (성생활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거나 옷 벗기 포커 게임을 하자고 수작했다. 그는 베넷 이전에 린지 보일런(Lindsey Boylan) 이라는 30대 보좌관에게 3년 동안 성희롱을 저질렀으며 원치 않는 입술 맞춤도 했다고 그녀가 바로 며칠 전 폭로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라스 다우섯은 쿠오모의 추락에 부쳐 “반 트럼피즘의 선봉에 선 우상들의 황혼을 바이든 취임 한 달 만에 보고 있다. 그들은 추락하기 쉬운 게 아니라 실패하고 있고, 불완전한 게 아니라 부패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다”라고 적었다.
밀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영원히 비밀로 남지 않는다. 그것이 정치인과의 일일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도 대전, 부산, 서울 도청과 시청 비서실 일들이 결국 언론을 타고 그 장(長)들을 잡지 않았는가?
진보좌파가 득세하는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은 옛날처럼 침묵하지 않는다. 쿠오모를 잡은 샬럿 베넷은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쿠오모 주지사가 그의 권력을 휘두르는(업무상 위력에 의해 성희롱을 하는) 방식에 대항하고자 내 주장을 공개하기로 했다.”
시대는 그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얻게 해주고 있기도 하지만, 권력 남용과 오용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들도 동시에 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두 얼굴의 정치인들이 이 시민들에 의해 인생을 끝내게 될 것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