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중립성 지킨 법관들…與 '판사vs검사' 편가르기 실패했나
입력 2020.12.08 00:02
수정 2020.12.07 23:38
전국법관대표회의, 판사사찰 관련 의안 부결
법원 정치적 중립성 무게…상정 자체 비판도
"판사사찰, 대단히 충격"이라던 與 주장 무색
10일 징계위 앞둔 윤석열은 부담 크게 덜어
전국 법관 대표들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의 단초가 된 이른바 '판사사찰'에 관해 대응하는 내용의 안건을 부결시켰다. 물론 검찰이 작성한 문제의 문건을 '사찰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일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윤 총장에게 타격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부결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큰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다.
7일 개최된 전국법관대표회의 하반기 정기회의에서는 법관 임용 절차 개선, 법관 평정 개선을 위한 의안 등 기존 통지된 것 외에 '법관의 독립 및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의안'이 현장에서 상정됐다.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검찰의 법관정보 수집과 정치권의 논란이 법관에 대한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법관 9명의 동의를 얻어 공식 안건으로 올렸다.
하지만 과반 이상 동의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전체 법관대표 125명 중 120명이 참석해 60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했지만, 정족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격론 끝에 원안과 수정안 3개가 표결에 올라갔지만 모두 부결됐다. 법관대표회의는 "정치적 중립의무를 준수해야하고, 오늘의 토론과 결론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부결 배경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법관들은 이번 안건 의결 결과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을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0일 법무부의 윤 총장 징계위원회에서 추 장관의 징계청구 적법성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판사사찰' 관련해 판사들의 집단행동을 유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최기상 의원이나 이탄희 의원 등 전국법관대표회의 출신들이 민주당 공천을 받는 등 일종의 친여성향 정치결사체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도 고려해 안건을 부결한 것 같다"며 "법원 내부에서 검찰에 대한 불만이 없지 않지만, 정의의 마지막 보루로써 정치적 논란이 법원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안건에 상정한 것 자체에 일선 판사의 부정적인 견해도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지은희 수원지법 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망에 "다수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안건 상정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외부의 정치세력을 논하기 전에 일선 법관들로부터 많은 오해와 오명을 얻고 차갑게 등돌려지는 마음 아픈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전국 법관 대표들이 '판사사찰' 관련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 윤 총장 징계위원회 심의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충격적"이라며 대단히 심각한 사건처럼 몰고 갔던 추 장관과 여권의 주장은 힘이 빠지게 됐다. 무엇보다 판사사찰로 규정하는 의안이 가결됐다면 윤 총장 해임을 요구할 강력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윤 총장의 부담은 크게 덜게 됐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