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옵티머스 분쟁조정' 고심…라임 보단 DLF처럼
입력 2020.11.24 06:00
수정 2020.11.24 15:51
금융사-투자자 간 자율배상 유도한 DLF사태 '참고사례'
라임무역 100% 배상 결정 두고두고 부담 "너무 나갔다"
금융감독원이 환매중단 사태를 일으킨 옵티머스 펀드 분쟁조정 절차에 들어선 가운데 배상비율 결정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분쟁조정위원회가 법적 강제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옵티머스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들과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수긍할만한 배상 비율을 도출해야 하는 현실적 고민에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옵티머스 실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분쟁조정 방안에 대한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또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외부 법률 검토도 맡겼다. 특히 금감원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한 분쟁조정에서의 배상 불만 유형, 배상비율 등을 옵티머스 분쟁 방안 수립에 '참고사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최대 관심은 금감원이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에 적용됐던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할지 여부다. 이 경우 계약 자체가 무효가 돼 투자자들은 원금 100%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100% 배상을 결정한 근거인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는 판매자가 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 때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금감원 입장에선 지난 6월 라임사태와 관련한 분조위의 100% 배상 결정이 두고두고 부담이다.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이 100% 배상 권고를 수용하기까지 극심한 진통을 겪은 데다 옵티머스 투자자들은 이를 근거로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모든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100% 배상을 요구하게 만든 결정"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금감원이 공개한 실사 결과에 따르면,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연 3~4%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모았지만, 제안서에 적혀 있던 공공기관 매출채권에는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기를 목적으로 펀드를 만들어 투자자들을 모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금감원이 사상 초유의 전액 배상카드를 또 다시 꺼내기엔 금융사의 반발 등 부담이 적지 않다.
이에 금감원은 판매사와 수탁사, 사무관리회사 등 '다자 배상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관리회사인 예탁결제원은 실제 펀드에 편입되는 자산이 사모사채임에도 종목명을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허위로 기재한 정황이 드러난 데다 하나은행의 경우 투자제안서를 통해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95% 이상 투자하는 펀드임을 알고도 사모사채만을 펀드에 편입하는 것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금감원 내부적으론 본격적인 분쟁조정 절차를 밟기 전에 투자자와 판매사 등이 손해액을 합의한 후 우선 배상하는 사전정산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책임론까지 떠안고 있는데, 사모펀드 판매사에 배상하라고 옥죄는 것 보다 자연스러운 방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안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DLF 사태 해결과정이 참고할 선례로 거론된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DLF 사태로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 2870명 가운데 94.4%에 달하는 2710명이 판매사인 하나·우리은행과의 자율배상에 합의했다. 투자자들이 배상받은 금액은 총 2349억원으로 전체 손실금액(424억원)의 58.4%였다.
과거 분쟁조정 과정에서 통상 20~30%대의 배상비율이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DLF 사태와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배상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투자자가 은행과의 자율배상에 이르지 못한 민원건수는 63건으로 2.2%에 불과했다. 분조위 판단이 강제력이 없고 법원 판단에 의해 뒤집힐 수 있지만, 금감원의 권고대로 금융사와 투자자 간에 배상이 대부분 이뤄진 결과다.
다만 옵티머스 같은 사모펀드의 경우 상품의 구조가 복잡한데다 자산운용사와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 회사 등의 문제가 뒤엉켜 있어 각 기관의 손해배상 부담 비율을 정하는 것부터 진통을 겪을 수 있다. 금감원도 "신중한 법리 검토를 통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옵티머스 배상 결정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는 제안서 내용이 계약을 취소할 만큼 착오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달라지는데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외부 법률 검토를 거친다고 하지만,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적용한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로 전액 배상을 결정한 것이 결과적으로 너무 멀리 가버린 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