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 원인제공자에게 책임 물어야
입력 2020.11.19 08:00
수정 2020.11.19 10:25
838억여원에 달하는 보궐선거비용 두고 논란
‘보궐선거 원인제공자 또는 공천한 정당 부담’이 압도적
헌법, ‘선거경비,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
보선 초래한 경우 보전 받은 전액 반환하도록 특례규정 제안
내년 4월에 실시될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서서히 점화되는 양상이다. 이와 함께 무려 838억여원에 달하는 보궐선거비용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서는 지방선거의 관리준비와 실시에 필요한 경비는 당해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571억원을, 부산시는 267억원을 각각 부담해야 한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재정이 악화된 두 자치단체에서는 선거비용을 분납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선출직 공직자의 사퇴 등으로 초래된 보궐선거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하는데 대해 반론이 거세다.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듯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기 보다는 보궐선거 원인제공자, 즉 사퇴한 공직자 또는 그를 공천한 정당이 부담해야 된다는 의견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야권에서도 이번 보궐선거비용은 민주당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번 보궐선거에서 비용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연이은 성 추문 사건으로 초래된 선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한 경우에는 공천하지 않기로 했던 민주당이 당헌까지 뒤집으며 공천하기로 결정한 데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 못할 바 아니나, 막대한 선거비용을 사퇴한 공직자나 소속 정당에 부담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는 헌법규정에도 위반될 소지가 있다.
앞의 여론조사에서 보듯 대다수 국민들은 보궐선거 원인제공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현행법상으론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보궐선거를 초래한 책임을 물으면서도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 입법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에서는 당선자가 지출한 선거비용을 선거 후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보전해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약 30억원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약 12억원을 각각 보전 받은 바 있다.
또한 같은 법에서는 당선자가 공직에 취임한 이후에라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아 당선이 무효로 되면 보전 받은 전액을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적용 범위를 넓혀 선출직 공직자가 사퇴 등으로 보궐선거를 초래한 경우에도 그가 보전 받은 전액을 반환하도록 특례규정을 둘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정당에서 추천한 선출직 공직자의 사퇴 등으로 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되는 경우에는 소속 정당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자금법에서는 후보자를 공천한 정당에 국가예산으로 선거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약 135억원, 자유한국당은 약 137억원의 선거보조금을 각각 지급받아 선거지원금 등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같은 법에서는 보조금을 법적 용도에 어긋나게 사용하는 등의 경우에는 그 금액의 2배를 회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당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사퇴한 경우에도 이를 적용하여, 정당에서 해당 공직자의 선거를 지원하는데 사용한 보조금액 또는 그 금액의 일정 배수를 회수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당선자에 대한 보전비용이나 정당에 주는 선거보조금 모두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재원이다. 이는 선거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성실하게 공직에 봉사하라는 뜻에서 국민이 베풀어 주는 일종의 혜택인 셈이다. 유권자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본인의 귀책사유로 공직에서 물러난 사람에게는 그 혜택을 거둬야 마땅하다.
글/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