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3법에 중대재해처벌법까지...“규제 공화국인가” 재계 한숨만
입력 2020.11.12 11:19
수정 2020.11.12 11:26
코로나로 경영환경 최악인데 쏟아지는 규제입법에 기업들 비명
정부·여당에 야당까지 동조...기업 목소리 외면하는 정치권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 개정안)에 이어 집단소송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입법 논의가 이뤄지면서 재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에서 기업들을 옥죄는 입법이 계속 이뤄지면서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각 기업들은 정부에 이어 국회에서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우려섞인 시선으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기업규제 3법을 이번 정기국회 최우선 처리 법안을 삼아 추진 중이다. 상법 개정안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주주총회 분산개최 근거 마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의 1%(상장사 0.01%)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 추궁을 가능하도록 한 제도인데 이것이 현실화되면 모회사와 자회사가 사실상 동일한 회사로 인정돼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게 재계의 우려다.
또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서 선임하는 제도로 외부 주주에 대한 견제장치가 사라지면서 경영권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헤지펀드가 소액 투자로 이사회 진입이 가능해져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고 기술 유출 등 보안도 약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인위적 지분 쪼개기로 기존 3%룰(감사 및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특수관계인 포함 최대 3%까지로 제한)도 무력화할 수 있다.
◆ 상법·공정거래법, 기업 경영권 위협...집단소송 리스크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재계의 우려가 크다.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 전속고발권 폐지, 과징금 상한 상향 등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는 지주회사가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더 많이 취득해야만 해 기업들의 비용 부담 급증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개정안은 현행 상장회사 지분 20% 이상, 비상장회사 지분 40% 이상 보유 의무를 상장회사 30% 이상, 비상장 5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도 고소·고발 남용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 관련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누구나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도 기업을 직접 고발할 수 있어 경쟁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과 공정위·검찰의 중복 조사 등 혼란이 불가피하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경영권 찬탈하려는 외부 세력들이 기업들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간섭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며 “기업들에게는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기업규제 3법과 별도로 추진 중인 집단소송법 제정안에 대한 우려도 크다. 법무부는 지난 9월 28일 증권업에 한정적으로 도입된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확대하고 소송허가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집단소송법은 피해자 50인 이상인 모든 손해배상 청구를 집단소송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정했는데 이것이 상법 개정안과 맞물리면 기업들의 소송 리스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것이다.
이번에 상법 개정안에서는 모든 상거래에서 상인의 위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의 5배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는 규정이 신설되는데 이 조항과 집단소송법이 결합되면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라는게 재계의 시각이다.
기업들은 집단소송 형태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되면 소 제기 자체만으로도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 타격, 주가폭락, 매출 하락 등 상상할수 없는 타격을 입게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경제단체들은 정부측에 기업들의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6일 법무부에 집단소송법 제정안 및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 목소리가 담긴 의견서를 전달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오는 16일 역대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을 초청해 상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그룹통합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에 관한 긴급 좌담회를 개최해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도 입법 논의에 적극 나서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기업들의 목소리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규제 3법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당초 취지보다 경영권 위협 등으로 기업들의 경영부담이 커지면서 오히려 경쟁력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정치권이 과연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는 좋지만 처벌 만눙주의 실효성 의문
기업규제 3법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도 추진되고 있어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보다 사업주와 법인의 처벌 수위를 높인 이 법은 이중 처벌에 따른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이 사업장이나 다중이용시설·대중교통에 대한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인명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기업에 형사책임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도록 할 수 있도록 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데 이어 여당 소속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관련 법안 발의를 예고한 상태로 보수야당인 국민의 힘까지 적극 논의하겠다는 자세여서 입법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법의 초점이 지나치게 사업주 처벌 강화에 맞춰져 있어 사고나 재해 예방에 실효성이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고 발생에 대한 예방 체계나 시스템 구축, 산업안전 문화 정착 등 다각적인 노력 없이 일벌백계주의식 처벌 만능주의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사업주가 노력해도 안전보건규정을 100% 완벽히 준수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사고의 책임을 지나치게 사업주에 전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미 많은 기업들이 산업 환경대책을 강화해 시행하고 사업장 내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의지를 복돋을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처벌 일변도의 정책이 아닌, 못하는 기업은 규제를 하더라도 잘하는 기업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안전한 산업환경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사업주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산안법 개정안이 시행(올해 1월16일)된지 1년도 채 안 된 상황에서 이중·과잉 처벌 논란도 일수 있는 상황인 만큼 새로운 법 제정이 아닌, 기존법 개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안전한 근로·산업 환경을 마련하자는데 누가 이의가 있을 수 있겠나”면서도 “하지만 이는 시스템과 체계 구축이 우선돼야만 가능한 것이지 사업주 처벌만으로는 개선에 한계가 분명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