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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삼성, 삼성의 대한민국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10.29 08:30 수정 2020.10.29 08:22

‘꿈꾸는 소년’으로 살다 간 괴짜 리더

창업과 수성을 함께 이룬 ‘태종’ 이건희

‘세계 초일류’의 꿈을 현실로 만들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인이 엄수된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정이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인이 엄수된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영정이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꿈꾸는 소년’으로 살다 간 괴짜 리더


영정 속 인물은 ‘꿈꾸는 소년’ 같았다. 그의 삶이 그랬듯 영정사진도 평범하지 않았다. 하늘같이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아 스스로 비현실적 이상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줬다. 정면을 주시하며 현세에 미련을 남기지도 않았다. 조금 멀리, 땅위의 이상향을 보며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 같았다. 필자가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하며 느낀 감상이다.


사람이 많을까봐 좀 늦은 시간에 조문했다. 저녁 9시가 다 됐는데 입구는 조명과 기자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조금 들어가 보니 조문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간소한 가족장’이기도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하 2층 장례식장 전체에 50명 이상이 있으면 안 된다는 지침에 따라 조문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란다. 1층 입구는 방역조치가 삼엄했다. 신원확인과 열측정 이후, 전화번호를 입력해 별도의 QR코드를 발급받고 확인한 후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고위임원과 비서실에서 영접과 안내를 하고 있었다. 조금 한산해 보이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추모한 후 상주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재용 부회장은 불행한 가정사, 구치소 복역과 난맥상인 재판에 시달리는 사람치고는 차분하고 평온했다. 아버지 이건희가 긴 투병 끝 오랜만에 평안을 찾았듯이, 자식 이재용도 잠시 숨을 돌리는 기분이었을지 모르겠다. 다사다난한 삼성가의 모습을 보며 인생의 희로애락이 부(富)의 다소에 있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나올 때 배웅하며 허허롭게 말했다. “통 못 봤네. 소주 한 잔 해야 하는데...” 그랬다. 벌써 못 본지 10여년이 지났다. 갓 20살에 예상보다 소탈한 재용이를 만났다. 당시는 ‘이병철의 손자’로 불렸고, 대학 1학년 말 아버지가 회장이 되시며 ‘이건희의 아들’로 불렸다. 40대 초반까지는 동기모임에서 간간히 만나 소폭을 나누곤 했다. 그리고는... 언론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 나이가 되면 장례식장에서나 만날 수 있다고 하더니 예외는 없는 것 같다.


창업과 수성을 함께 이룬 ‘태종’ 이건희


일요일부터 이건희 회장 뉴스가 뉴스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의 업적이 재평가 됐다. 어떤 정치인은 그의 과오를 거론했다가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형평에도 맞지 않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조문객도 다양했다. 정·재계 대표와 원로들과 예술계·학계·체육계의 저명한 인사들이다. 그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영역에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라인업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대표 ‘경제인’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보국’을 구현해 꽃을 피웠고, 사업으로 대한민국을 빛나게 했다.


보통 국가의 시조와 대기업의 창업자는 모두 ‘생이지지(生而知之)자’들이다. 한마디로 ‘천재’라는 의미다. 창업자는 제왕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었으니, 제왕으로 태어나고 그 재능을 전쟁 중에 단련하고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생이지지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업자가 빛날 수 있는 것은 그 후세가 수성(守城)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잠깐 성공했으나 한 세대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제국이나 기업들은 수없이 많다. 중국 진나라가 그랬고, 우리나라 기업 대우가 그랬다. 3대 정도가 되면 일단 궤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이씨 조선도 그랬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을 했으나, 태종 이방원이 아니었으면 이씨 왕조로 500년을 이어가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이방원은 창업주 이성계의 혁명동지 아들이었고, 조선 최절정기의 주역인 세종대왕의 아버지였다. 그가 없었다면 창업이 유지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문화의 최고 융성기를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선의 활력을 소진시킨 임진왜란에서 마지막으로 활약한 거북선도 태종때부터 사료에 나오니, ‘활기찼던 조선’은 태종 이방원이 구축한 나라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이 조선의 태조라면, 이건희는 태종이다. 3대가 공을 들여 ‘학이지지(學而知之)자’로 양성한 이재용이 세종 같은 업적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세계 초일류’의 꿈을 현실로 만들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칭송이 많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초일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가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고 역할이었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는 겨우 외국원조에서 벋어난 2등 국가였다. 적어도 ‘3김시대’까지는 그랬다. 90년대 이후 이건희 회장이 주도한 삼성은 우리국민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심어줬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친(親)삼성이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집권초기에 정치자금과 국가 마스터플랜을 제공해서 그랬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가원수가 되면 수없이 많은 변화가 생기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의전이고 그 의전의 꽃은 정상외교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은 골치 아픈 정치적 상황이 벌어지면 외유를 나가곤 했다. 그런데 유독 노 대통령이 외유가 많았다. 국가원수 대우도 그랬지만, 그 때쯤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대우받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외교에도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메인스폰서 광고, 파리 드골공항과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걸려있는 삼성의 광고를 보면서 한국 사람이라면 누가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필자도 그때쯤 외국에 나갈 일이 많았다. 외국사람을 만날 때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거의 어김없이 삼성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삼성이 일본기업인 줄 알았는데 한국기업임을 확인하고 한국을 다시 보게 됐다고도 했다. 덩달아 한국기업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사업영역도 넓어졌다. 그것이 다시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제고시켜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었다. 집안이 잘 되려면 큰집이 잘 되어야 하고, 그래야 식구 모두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이건희 신화와 대한민국 번영이 풍전등화에 있다


혹자는 창업주 이병철의 최고업적인 이건희를 후계자로 삼은 것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옳은 평가다. 아버지가 뿌리를 튼튼히 심고 아들이 나무를 굳건히 성장시켰다. 다음은 꽃을 피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후계자로 등극할 때만 해도, 그는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은둔형 천재’였다면, 이재용은 ‘호감형 인재’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자신의 실력으로 나왔고, 일본과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중국의 (공산당) 당교도 다녀왔다. 제왕학을 제대로 배운 후계자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제도는 만만치 않았고, 반기업정서도 팽배해 있었다. 미국 등 선진국에는 거의 없거나 미미한 상속세가 우리나라에서는 60%에 이른다. 상속세 문제에서도 드러나듯 우리나라 경제제도는 기업 최대주주에게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다. 그러니 그들은 어렵게 갈고닦은 능력을 경영권 유지에 소모하고,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인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는 지난 대선 이전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기업 최대주주의 취약한 상황을 직시하고,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엄하게 부과하는 대신 국가가 그들의 경영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약 이들이 경영권을 상실하면 최대주주는 외국자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 기업은 이미 국민기업이 아니다. 르노삼성이나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외국 기업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때는 우리 정부가 압박을 가하기는커녕 일자리 유지를 위해 산업은행 등을 동원해 국가자본을 제공하고 존치를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 여권인사들은 북한 김씨 왕조를 보면서 ‘내재적 접근’을 주장한다.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다. 그 ‘내재적 접근’이 한반도에 있는 우리 동포를 죽이고 우리나라와 우방을 협박하는 명분을 제공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국내기업에는 대한 역차별은 서슴치 않는다. 대안 없이 기업의 세습을 악으로 규정하고 쥐어짜 뺏을 생각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들을 외국에 보내고 외국기업에 취업시키는 것 같다. 국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고 다른 나라에서 거위를 찾는 모양새다.


제국은 외부의 침입에 의해 망하지 않는다. 항상 스스로 망한다. ‘분열’과 ‘반목’을 통해서다. 우리나라는 아직 제국도 아니면서, 조금 먹고 살만 하다고 서로 반목하고 싸우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 잘나가는 큰 집을 앞세워 집안의 영역을 넓힐 생각은 하지 않고, 큰집의 알량한 재산을 쪼개어 나눠먹는 게임에 몰두한다. 그렇게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가고 있다.


글/김우석 정치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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