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기획┃아이돌 세계관③] 피로 유발하는 ‘억지’ 세계관, 굳이 써야할까
입력 2020.10.05 00:00
수정 2020.10.05 16:45
“세계관을 위한 세계관, 왜 굳이 쓰려고 하는지…”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은 케이팝의 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만 무의미하게 남발되면 오히려 ‘독’이 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룹 엑소의 등장 이후 대부분의 그룹들에 데뷔 혹은 컴백하면서 팀의 세계관, 혹은 시리즈 앨범에 담은 세계관을 내세우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판타지적 세계관은 탄탄한 기획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금세 그 빛을 잃고 만다.
엑소를 시작으로 방탄소년단, 드림캐쳐, 여자친구, 이달의 소녀 등 탄탄하고 유기적인 서사를 이어가고 있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데뷔 초창기 내세웠던 세계관을 조용히 접은 아이돌 그룹도 허다하다.
한 가요 관계자는 “세계관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그룹들을 보면, 음악이나 기획 등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데뷔 당시 주목을 받거나 독특해 보이려고 급박하게 세계관을 설정하는 경우”라며 “흐름에 맞춰서 끼워 맞추려고 하면 장점보단 단점이 크게 부각된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야 할 세계관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장황한 세계관을 내세웠다가 이를 채 수습도 하지 못하고, 얼렁뚱땅 다른 콘셉트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드림캐쳐 관계자는 “세계관을 구체화시킬수록 표현의 한계가 명확해 지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팀과 어떻게 매치를 시키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림캐쳐 소속사는 “스토리와 오브제,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라고 꼽았다.
세계관이 점점 복잡해지고,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장황한 서사만을 고집하는 일부 그룹들로 인해 대중은 세계관 자체에 피로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관이 ‘필수’가 되다 보니 억지로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들도 다수 생겨났다. 더욱이 그룹 단위의 세계관의 경우는 데뷔 이후 긴 활동 기간, 또 그 기간 동안 멤버 탈퇴 등의 변화들이 세계관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프로듀싱의 힘이 필수적이다. 세계관과 그 세계관의 구체화 과정에 ‘이유’가 없는 끼워 맞추기식의 기획으로는 데뷔 당시의 폭발력을 다시금 재현해내긴 어렵다.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이를 기반으로 음악과 비주얼, 메시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드림캐쳐컴퍼니 관계자는 “드림캐쳐는 다른 아이돌과는 다르게 한 가지 콘셉트 아래 묶어 내는 방향이 아닌, 판타지 스토리를 이어가는 서사를 토대로 그 안에서 다양한 콘셉트 변주를 만들어 낸다. 음악적으로도 록 메탈을 베이스로 두되 일렉트로닉이나 뭄바톤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 입히고 있다”면서 “이 부분이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찬 점이다. 매 앨범마다 드림캐쳐 특유의 매력을 녹이면서도 새로움을 가미해야 한다. 변화가 없으면 고여 버리고, 너무 많은 변화는 기존 팬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어 그 중심을 잘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케이팝 아이돌을 중심으로 세계관의 사용은 계속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한 그룹을 바탕으로 그 그룹이 가진 스토리가 웹툰이 될 수도 있고, 영화, 드라마 심지어 예술적인 방향으로까지 나갈 수 있다. 즉 잘 만든 하나의 세계관은 여러 가지 장르의 콘텐츠로 파생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있어서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 매력적인 세계관을 의미 없이 남발하는 것이 아닌 새롭고 촘촘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 나와서 가요계가 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