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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역행 규제공화국①] 상법 개정 앞세운 '문화대혁명'급 기업 살육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0.10.01 07:00 수정 2020.09.30 20:07

반기업 정서 기반한 '기업 죽이기'...제1야당 동조에 재계 '절망'

“소액주주 보호 명목 하에 투기자본한테 우리 기업 내주는 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2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2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 각본에 여당은 주연, 여기에 제1야당까지 조연으로 합류한 ‘상법 개정’ 막장극은 기업을 ‘악역’으로 둔갑시켜 벌준다는 스포일러가 이미 업로드된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이 국회 통과를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약화시키는 법안이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 대주주와 경영진이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반기업적 인식 하에 만들어진 규제로, 주주들의 견제 권한을 강화시키는 데만 집중하느라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력 약화에 따른 혼란은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다중대표소송제는 투기자본이 우리 기업들을 단기차익 실현의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에서 합법적 배경을 만들어줄 대표적인 제도로 지목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임무를 게을리 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명목상으로는 자회사 경영진의 배임을 견제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이런류의 제도는 소액주주보다는 투기자본에게 더 유용하다는 데 있다. 투기자본이 이 제도를 악용하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기업을 쥐락펴락 하면서 단기 차익을 빼먹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경영활동은 위축되고 기업들은 고사된다.


상장회사의 경우 경영진이 다수의 주주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임무를 게을리 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조항도 모호해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


특히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배상액이 주주에게 직접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투기자본들이 다중대표소송을 빌미로 경영권을 압박해 단기차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3000억원의 고배당과 자사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하며 현대차그룹을 압박한 게 대표적이다.


결국 엘리엇은 그해 정기주총에서 표결에 패하면서 좌절됐지만,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투기자본들이 우리 기업들을 ‘먹튀’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정부와 거대여당이 나서서 외국계 투기자본 앞에 우리 기업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셈이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해당 조항을 적용받는 자회사들의 경영활동 위축도 불가피해진다. 경영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과감한 투자나 혁신에 나서기보다는 위험을 회피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경영에 임할 여지가 높다.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경제 활력을 회복시키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기업들의 경영활동 위축은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문제 조항. ⓒ대한상공회의소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문제 조항. ⓒ대한상공회의소

‘감사위원 분리선임’ 역시 대주주의 의사결정권을 제한해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기업 기밀을 유출시킬 위험이 큰 법안으로 지목된다.


지금은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이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도입되면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해야 한다. 감사위원이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경영활동을 감시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상법개정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악용할 여지가 더 크다. 지금도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임까지 의무화될 경우 대주주의 감사위원(이사) 선임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과도하게 제약되는 반면, 펀드나 기관 투자자는 더 적은 지분으로도 연합을 통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세력이 단기차익을 노리고 우리 기업의 주주로 들어올 경우 감사위원 선임 등을 무기로 배당 확대 등에 집중해 기업의 장기 성장 여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된다.


감사위원에게는 회사의 모든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있는 만큼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우리 기업들의 기술 보호 장벽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나 경쟁사와 연관된 펀드가 감사위원을 통해 회사 기밀을 빼내가도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기업들은 정부와 여당에 의한 ‘경영권 무장해제’를 막아줄 최후의 보루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역할을 기대했으나, 그런 희망도 사실상 사라졌다. 국민의힘을 이끄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상법 개정안에 원론적 찬성 의견을 밝히며 등을 돌린 탓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은 잇따라 김 위원장을 만나 기업규제 법안 저지를 호소했으나 그는 끝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기업들로서는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IPO 핵심협약 비준 등을 살펴보면 기업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기업인들을 숙청하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연상된다”면서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보수정당마저 이에 동조하는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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