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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南공무원 총살 만행] 세부 내용은 못 밝히면서 '월북자' 낙인부터…유족들은 분통

최현욱 기자 (hnk0720@naver.com)
입력 2020.09.25 11:50 수정 2020.09.25 18:27

정부·군, 고인 A씨 '월북자' 규정에 유족들 분통 터뜨려

A씨 친형 이래진 씨 분노 "월북 짜맞추기 위한 시나리오

내 동생, 북으로 표류돼 사살될 때까지 군이 다 목격해

北 만행 항의해달라…또 다른 국민도 당할 수 있어" 울분

시민들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연평도 공무원 피격 사건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시민들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연평도 공무원 피격 사건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서해상에서 우리 국민인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를 총격 사살하고 기름을 부어 불태운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군 당국은 A씨를 '월북자'로 규정 짓고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다"는 등의 주장을 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A씨의 유족들은 "나라에서 A씨를 월북자로 몰아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북한에 의해 사살된 우리 국민 A씨의 친형인 이래진 씨는 25일 KBS 라디오 '최강시사'에 출연해 "월북이라는 용어를 짜맞추기 위한 어떤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동생이 최소 20시간에서 30시간 정도 표류를 했다고 보는데, 감지를 놓쳤거나 전혀 몰랐던 사실을 숨기거나 감추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국방부가 A씨에게 부유물(튜브로 추정)이 있었고,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점, 신발을 두고 간 점 등을 월북 근거로 든 데 대해 이래진 씨는 "그 신발은 배에 승선했던 승조원들도 동생의 것인지 잘 모른다"며 "(A씨가 실종된 뒤) 배에 남은 구명조끼를 전수조사하고 나서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월북을 했다는데, 배에 구명조끼가 몇 장 있었는지도 모르고 A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든 것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부유물은 살려고 잡을 수 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내 동생이 이북으로 표류 돼 실신 상태가 된 후 북측 경계병이 동생에 총을 겨누고 사살될 때까지의 과정을 군은 다 목격을 했다"며 "북한에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이 만행을 반드시 재발 방지해야 하고, 향후에 또 다른 국민이 이렇게 당할 수 있으니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의 언급대로, 사건 발생 이후 보였던 군 당국의 안일한 행보가 더 큰 분노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군 당국은 지난 23일 자정 무렵 이 사건을 처음 언론에 알리며 "월북을 시도하던 A씨가 북측에 피격됐다"고 표현했고, 다음날인 24일 오전 공식 브리핑해서 부유물 및 구명조끼 등을 근거로 A씨가 월북을 하다 피격된 것으로 설명했다.


A씨가 정말 월북하려 했더라도…엄연한 '비무장' 우리 국민 살해한 만행
주호영 "처참한 죽임 당한 우리 국민 명예 두번 손상되지 않게 단정 금물"
김종인 "명백한 군사도발이자 '전시 민간인 사살 금지' 어긴 국제법 위반"
김근식 "비무장 민간인에 어떤 경우에도 총격 안되는게 상식…야만적 행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외교안보특위위원 긴급간담회에서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성명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외교안보특위위원 긴급간담회에서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성명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설령 고인이 된 A씨가 정말로 월북을 시도했다고 가정하더라도, 헌법상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며 비무장한 민간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북측의 만행을 우리 당국이 지켜보고만 있었던 데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야권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제1야당' 국민의힘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이 씨와 같은 방송에 출연해 "(A씨가 월북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떤 단정도 금물"이라며 "가족과 동료는 전혀 월북할 동기가 없고 환경도 아니라고 한다. 처참한 죽임을 당한 우리 국민의 명예를 두 번 손상하지 않도록 단정적으로 하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또한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이 없는데 국방부를 비롯해 정부는 월북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고 언론에 전파하며, 피살된 희생자의 명예는 물론 슬픔을 가눌 길 없는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질을 했다"고 질타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예정에 없던 비대위-국민의힘 소속 국회 국방위원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운 반인륜적이고 야만적인 살인행위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며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을 향한 군사도발이자 중대한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 제네바협약과 UN결의안에 따르면 전시에도 민간인 사살은 금지"라고 단호히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도 "사람이 바다에 표류중이면 일단 구조하는 게 우선이고 기본이며, 월북의사를 밝혔더라도 일단 자유의사를 묻고 의거입북시키거나 절차에 따라 강제추방 혹은 대남송환하는 것이 정상이고 기본"이라며 "비무장 민간인이면 어떤 경우에도 총격을 가해서는 안 되는게 상식이고 기본인데, 북한은 총으로 사살하고 기름을 부어 불태웠다. 반인도적 천인공노할 만행이며, 야만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사태 이 지경인데 '남북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라는 군과 文정부
군 "북으로 넘어간 인원 사격 금지한다는 조항 없으니 위반 아냐"
청와대 "군사합의 '정신은 훼손'했지만 세부 항목 위반은 아니다"
남북합의 첫 머리엔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한다" 버젓이 명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이에 더해 군 당국의 자의적 해석도 비난을 자초했다. 북한의 이번 우리 국민 사살이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체결한 '9.19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한 게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은 탓이다. 해석의 근거로는 "북으로 넘어간 인원에 대해 사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서주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번 사건은 9.19 군사합의의 세부 항목 위반은 아니지만 접경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9.19 군사합의의 정신을 훼손한 것은 맞다"며 '정신 훼손'만을 강조했다.


군 당국과 청와대의 자의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합의의 맨 첫머리 1조부터 나오는 "남북은 지상과 해상 등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내용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발적인 상황 발생시 상호 연락 하에 합의처리한다"는 내용도 휴지조각이 됐다는 평가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판문점 선언과 9·19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한 명백한 군사 도발행위지만 정부는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더욱 분노가 치미는 것은 국민이 처참하게 죽어갈 때 군이 손 놓고 지켜만 보고 있었단 사실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김정은에게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현욱 기자 (iiiai072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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