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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의 i티타임] 분리공시제, 아마추어 발상의 표본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입력 2020.09.23 07:00 수정 2020.09.22 22:04

국내 시장 상황 고려 없이 제조사 간 경쟁 기대

‘단통법’ 문제 야기한 시장 논리부터 되짚어봐야

지난 7월 3일 오후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집단상가의 모습.(자료사진)ⓒ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지난 7월 3일 오후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집단상가의 모습.(자료사진)ⓒ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분리공시제는 제조사 지원금이 원천 봉쇄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통신비 부담 완화라는 당초 목적에서 벗어나 기업 규제만 생기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최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6살 먹은 현 단통법도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져 각종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마당에, 또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자고 정부와 여당이 나서니 실망을 넘어 그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분리공시제는 휴대폰을 판매할 때 전체 보조금에서 이동통신사가 얹는 지원금과 제조사 지원금을 따로 공시하는 제도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끝내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지금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와 삼성전자·LG전자 등 제조사 지원금을 합친 금액만 소비자들에게 공지하고 있는데, 제조사가 여기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밝히자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제조사 지원금이 밝혀지면 제조사 간 경쟁이 붙어 지원금을 서로 더 올리고, 소비자가 단말을 더 싸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펴고 있다.


이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소리다. 지난 2분기 기준 국내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67%, 애플 19%, LG전자 16% 순으로 삼성전자 독주 체제다.


심지어 애플은 삼성, LG와 달리 아이폰 구매자들에게 제조사 지원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은 삼성전자가 있지도 않은 경쟁사를 의식해 제조사 지원금을 늘릴 거라고 기대한 것인가. 오히려 애플처럼 지원금을 아예 없앨 것이라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제조사 지원금이 밝혀지면 단말 출고가 부풀리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뜬구름 잡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국내에서만 스마트폰 장사를 하고 있다면 성립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삼성전자 전체 스마트폰 사업 매출에서 국내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당연히 삼성전자는 제품을 출시할 때 국내 상황만 고려해 제품 가격을 책정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 출시된 ‘갤럭시노트20’를 봐도 국내 119만9000원, 해외 999.99달러(약 116만원)로 출고가에 큰 차이가 없다.


정부와 여당은 삼성전자가 국내 시장에만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내놓길 기대한 걸까. 해외에서 비싸게 판다고 ‘역차별’ 논란을 맞아 점유율이 폭락하는 시나리오는 기업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로만 보니 이런 단순한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단통법에 분노하는 근본적 이유는 ‘스마트폰을 싸게 살 수 있는 길을 정부가 막고 있다’는 데 있다. 소비자들은 휴대폰 살 돈을 아껴야 하고, 이동통신사는 고객을 유치해야 하며, 제조사는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는 시장의 당연한 논리부터 되짚어보길 바란다.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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