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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띄운 대출논쟁…금융당국, 신용대출 규제 눈치 모드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09.15 06:00
수정 2020.09.14 21:08

'기본대출권' 주장에 금융권 "국가가 미상환 손실 부담하는 反시장적"

금융당국 신용대출 규제 나서려다 '멈칫'…"시장질서 뒤흔들어" 우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제10차 목요대화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최근 급격히 불어난 신용대출에 대한 규제를 준비하던 금융당국이 예기치 않은 논란에 휘말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서민들의 저리자금 대출을 국가가 보장해 주는 '기본대출권' 도입을 주장해서다. 비현실적인 서민금융 지원책이라는 금융권 비판이 고조되는 있지만, 금융당국 내부적으로 차기 유력 대권주자의 주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르면 이달 중으로 신용대출 규제책을 내놓을 예정이었던 금융당국이 정치권에 가열되는 대출논쟁의 추이를 살핀 뒤 대응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신용대출을 조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난데없이 떨어진 대출논쟁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급증하는 신용대출을 조이려던 금융당국이 정치권의 대출이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인 상황"이라며 "내놓는 메시지 조율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융권에선 이 지사가 내놓은 기본대출권의 취지인 서민금융 지원책 마련에는 공감하면서도 누구나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발상에 대해선 비현실적인데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기본대출권 도입에 따른 자금조달방법 등을 고려하면, "밑빠진 독에 혈세 붓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가가 모든 대출손실을 책임진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빚을 성실히 갚기 위해 노력한 성실한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닌가"라며 "신용대출 시장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던진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 지사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기본대출권..수탈적 서민금융을 인간적 공정금융으로 바꿔야'라는 글에서 "이자율(최고금리) 10% 제한과 불법 사채 무효화에 더해 장기저리대출 보장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대부업체는 회수율이 낮으니 미회수위험을 다른 대출자들에게 연 24% 고리를 받아 전가한다"며 "수입이 적고, 담보가 없다 하여 초고금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니다"고 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신용대출이 이달 들어서만 1조원 이상 불어나자 실태점검을 예고하는 등 돈줄 조이기를 검토했지만, 이재명발(發) 대출논란이 확산되자 "확정된 것은 없다"며 정치권의 분위기를 살피며 신중한 대응을 모색 중이다. 금융당국은 담보 없이 빌려주는 신용대출의 특성상 금융기관의 건전성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 등을 고려해 각 금융사에 실적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상황이다.


'수탈적 금융'이라며 적폐몰이…'금융사vs서민' 갈라치기 하나


최근 이 지사가 내놓은 금융정책 저변에는 '금융사는 서민 등골 빼먹는 악덕기업'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12일 기본대출권을 띄우며 거론한 "수탈적 서민금융"이라는 표현은 수탈의 주체로 금융회사를 지목한 것으로 해석됐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앉아서 이자장사로 배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기본대출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시장적 접근으로 보고 있다. 금융사가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이유는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과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논리에 따라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대출창구 문턱이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는다. 이 지사는 이를 두고 '백골징포(白骨徵布?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징수)'라고 했다.


이 지사의 제안을 금융시장논리로 따져보면, 시장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국가 등이 빚더미에 앉게 될 일이지만, 정치공학으로 계산하면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금융권의 반발과 경제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집단의 지적 등으로 논란이 커질수록 정치적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소수집단인 금융권과 금융회사를 적폐로 몰아세워 '금융사 대 서민'으로 갈라치기를 시도하면, 앉아서 표장사로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이 지사가 "금융 관련 고위공무원이든, 경제전문가든, 경제기자든 토론과 논쟁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한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달 서민 보호를 명분으로 현재 연 24%인 등록 대부업체의 법정 최고금리를 연 10%로 단번에 낮추자는 제안을 내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금융당국 수장인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급격하게 (인하)하기는 어렵다"며 금융상식으로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대부업체 법정 최고 금리가 급격하게 인하하면, 서민들의 대출 수요가 제도권 금융에서 충족되지 못해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는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정최고금리를 10% 밑으로 낮추면 중·저신용 대출자들의 부담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들이 이들에게 더 이상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구조가 된다"며 "이는 결국 높은 금리로라도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불법사금융으로 밀어넣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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