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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이름 없는 병사들의 이야기, ‘1942 언노운 배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8.20 14:06 수정 2020.08.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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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과 독일의 전투에서 소련이 승기를 잡은 가장 중요한 전쟁은 르제프 전투로 알려져 있다. 1942년 1월부터 1943년 3월까지 1년 2개월간에 걸친 전투로 전쟁 참여 인원만 300만 명이다. 소련군 병력 200만 명 가운데 사상자가 130만 명 이상에 이른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전투다. 그러나 소련이 승리한 이 전투에는 르제프 지역의 한 마을을 사수한 알려지지 않은 부대원들의 희생이 있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1942 언노운 배틀’은 르제프 전투에 투입된 소련 병사들의 처참한 실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르제프 전투에 직접 참여한 용사가 집필한 소설이 원작이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발표된 원작 소설에는 전쟁의 참상과 함께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영화는 1942년 1월 독일이 탈환한 르제프의 한 마을을 소련군이 재탈환하면서 시작된다. 이미 여러 차례 이어진 교전으로 부대원의 70%를 잃은 상황에서 대부분이 노동자계급인 부대원들은 독일이 이 마을을 소련의 주된 공격루트로 오인하도록 마을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1942 언노운 배틀’은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가장 치열했던 전투 속에서 단 하나의 승리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름 없는 병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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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지만 부대원들의 인간미에 초점을 맞춘다. 전투 중에 동료의 죽음과 적의 눈을 찌르는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병사들의 모습과 전쟁 전 소매치기였던 병사를 감싸주는 부대원들의 모습에서 긴박한 전투 중에서도 러시아 노동자들이 지닌 따뜻한 인간미를 강조한다. 독일군의 전단지를 소지했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군법회의에 넘기려는 젊은 공산당 정치위원의 목숨을 구해주는 노병사의 행동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죽음을 오가는 참혹한 전쟁터, 적은 외부에 있지만 내부에도 존재한다고 믿는 공산당 정치위원들은 전쟁 중에도 군 지휘관들보다 더 높은 지위로 부대원들의 행동을 철두철미하게 감시한다. 이들의 냉혹한 감찰은 최전방에 배치되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병사들의 용기와 전투의욕을 낮추게 한다. 더욱이 전쟁 전에 학생, 이발사, 광부, 철학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노동자계층의 병사들은 기본적인 무기와 식량을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한 채, 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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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미화보다 사실감을 추구한 것도 특징이다. 다른 전쟁 영화들이 각종 특수효과를 이용해 영상을 흥미위주로 드라마틱하게 만들지만 ‘1942 언노운 배틀’은 영상을 미화시키기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데 치중했다. 영화가 더욱 현실적이고 몰입감이 높았던 것은 CG와 특수효과를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특히 진지전 후 벌어지는 백병전 장면은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명장면이며 전쟁의 현장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당시 사용됐던 총탄음까지 완벽히 재현하기도 했다. 실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용사가 영화를 보고 “진정한 전쟁영화”라고 할 정도로 화려한 CG는 없지만 병사들의 참혹한 현실을 관객들에게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소간의 냉전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전쟁의 위험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 미·중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전쟁의 위험은 아직도 상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치학자들은 지금과 같이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지속되면 전쟁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염려의 시그널일까? 최근들의 ‘핵소고지’, ‘덩케르크’, ‘미드웨이’, ‘1917’, ‘그레이하운드’ 등 전쟁영화가 잇달아 개봉되고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1942 언노운 배틀’ 역시 우리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려주는 진정한 전쟁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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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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