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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떠나려는 자들의 딜레마, 영화 ‘트랜짓’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8.06 15:30 수정 2020.08.06 15:30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를 영화화

인간의 실존적 딜레마를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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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프랑스 마르세유에는 전쟁과 파시즘의 공포를 피해 떠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 쿠바 등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입국허가서와 통과비자가 필요하지만 발급받는 과정이 까다로워 떠나는 게 쉽지 않았다. 1944년에 출간된 안나 제거스의 소설 ‘통과비자’에는 당시 유럽인들이 느낀 공포와 절망, 도주의 권태로움 등 유럽을 떠나려는 망명자들의 정신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동독 출신의 유대인 작가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는 자신이 겪은 프랑스와 멕시코에서의 오랜 기간 망명생활 경험과 정서를 효과적으로 직조해, 소설로 단단한 완결성을 획득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은 이 소설을 영화화 했으며, ‘트랜짓’은 미국의 전(前)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자신이 본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라고 극찬하면서 화제를 낳고 있다.


영화는 스토리는 이렇다. 나치정권의 독일군이 파리로 진군하자 전체주의와 독재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인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 분)는 망명선을 타기 위해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로 탈출한다. 그에게는 자살한 작가 바이델의 가방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작가의 원고와 아내에게서 온 편지 그리고 멕시코 대사관에서 온 비자 허가서가 있었다. 멕시코로 떠나려 했던 게오르그는 떠나려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는 그곳에서 신비한 여인 마리(폴라 비어 분)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트랜짓’은 인간의 실존적 딜레마를 다룬 영화다. 인간은 늘 ‘선택’이라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영화 역시 게오르그와 마리의 선택의 딜레마를 따라간다. 게오르그는 마르세유를 떠나야 하지만 죽은 친구의 아들을 보며 쉽게 떠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마리의 존재로 복병을 만나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게오르그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멕시코 행 승선표를 건네고 홀로 남게 된다. 한편 마리는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면서도 또 다른 남자를 품에 안는다. 마리가 보여주는 이중적 모습과 게오르그가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않는 모순된 행동은 유사하다.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내재된 모순, 영화 속 인물들이 놓인 상황은 모든 인간의 실존적 딜레마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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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의 불일치로 현재의 문제를 재조명한다. 영화가 생경하고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부조화 때문이다. 펫졸드 감독은 현재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망명을 떠나는 사람들을 다룬다. 현재의 장소와 과거의 사건을 공존시키면서 지금의 유럽 난민 문제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설정을 통해 유럽의 난민 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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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의 활용도 독특하다.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영화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내레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3인칭에 해당하는 그것도 텍스트 밖에 인물의 시점으로 내레이션을 활용했다. 게오르그가 자신의 속죄를 위해 마리를 떠나보내고 스스로 홀로 마르세유에 남겨진 것처럼, 영화 속에서 내레이션을 통해서도 남겨진 자로 위치시켰다.


사랑과 인간의 심리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영화 ‘트랜짓’은 아련하고 쓸쓸하며 몽환적인 러브 스토리를 통해 유럽의 난민 문제, 인간 실존의 문제를 풀어냈다. 또한 유연하고 아름다운 영화 속에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운을 남겨주는 유럽영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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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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