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배우탐구⑩] “엄정화는 천사다”…섹시 아이콘에서 대체불가 배우로 ‘진화’
입력 2020.08.11 14:30
수정 2020.08.11 19:02
시작은 미미했으나 가수로서, 배우로서 입지 굳혀 '마돈나' 등극
영화 '오케이 마담'에서 꽈배기 튀김에서 항공기 액션까지 소화
엄정화가 책임진다, 코로나19 잊게 하는 시원한 웃음-통쾌한 반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위축되고 장마에 꿉꿉한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웃게 할 영화가 내일(12일) 개봉한다. 영화 ‘오케이 마담’(감독 이철하, 제작 영화사 올㈜-㈜사나이픽처스,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이다. 영화를 전면에서 이끄는 배우는 엄정화다. 섹시함과 귀여움, 그것을 넘어서는 실력과 성실하게 다져온 건강함을 지닌 엄정화, 대한민국을 웃게 할 영화의 주연으로 대체 불가능한 캐스팅이다.
벌써 32년째다. 1989년 MBC 합창단원이 된 후 1992년 영화 ‘결혼이야기’의 단역으로 시작해 가수로서 또 배우로서 성공한 입지전적 엔터테이너가 된 후에도 엄정화는 베짱이로 산 적 없이 늘 열심이다.
가수와 배우를 오가는 이들이 종종 있지만 보통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는다. 엄정화는 다르다. 가수 하다가 바로 드라마나 영화로 대중을 찾았고, 영화 개봉해 놓고는 앨범을 발표했고, 음악활동 하는 중에 영화를 촬영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당시로서는 파격적 캐스팅이었던 영화 데뷔 2년 차에 주연을 맡은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개봉해 놓고는 바로 삽입곡이었던 노래 ‘눈동자’가 수록된 1집 ‘SORROWFUL SECRET’(소로우풀 시크릿, 아주 슬픈 비밀) 활동을 시작했다. 신인그룹 지누션의 노래 ‘말해줘’의 피처링을 맡아 인기를 끈 뒤 바로 드라마 ‘스타’로 안방극작을 찾는 식이었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촬영하면서 음반 작업도 병행했는데, 큰 사랑을 받은 노래 ‘다가라’가 수록된 7집 ‘花7’(화7)이다. 9집 ‘Prestige’(프레스티지) 활동 중에 영화 ‘Mr. 로빈 꼬시기’가 개봉됐고, 연이어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으로 안방을 찾았다.
가수 하나만 놓고 봐도 엄정화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하늘만 허락한 사랑’ ‘배반의 장미’ ‘POISON’(포이즌, 독), ‘FESTIVAL’(페스티발)’ ‘초대’ ‘몰라’ 등 제목만 들어도 음률이 귀에 들리는 공전의 히트곡을 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4년 8집 ‘SELF CONTROL’(셀프 콘트롤)은 엄정화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담은 ‘SELF’,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풍의 노래를 담은 ‘CONTROL’ 2장의 앨범으로 이뤄졌는데. 스스로를 위한 ‘SELF’ 음반을 위해 달파란과 정원영, 최진우 등 젊은 음악가들과의 작업에 공을 들였다.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애정은 9집 ‘Prestige’(프레스티지)로 이어지고, 성숙하게 완성됐다는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는다. 이때도 최진우, 배영준, 페퍼톤즈 같은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했다.
뿐만이 아니다. 노래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과 ‘배반의 장미’ 사이 연극 ‘택시 트리벌’ 무대로 달려갔다. 데뷔 초부터 가수이자 배우로, 연기를 더 잘한다는 평가를 원했던 엄정화는 “제대로 연기훈련을 받고 싶어” 장진 연출, 최민식 주연의 연극 연습에 참여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블루 시걸’의 성우를 맡기도 했고, 뮤지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 말려’에 출연하기도 했다. FM라디오 ‘가요광장’에서 코너를 진행하다 메인 DJ로 기용돼 3년간 진행하기도 했고,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코미디 펀치펀치’ 등의 예능프로그램 MC를 맡기도 했다.
엄정화는 명실공히 ‘마돈나’이다. ‘한국의 마돈나’라고 불리거나 영화 ‘댄싱 퀸’ 속 ‘신촌의 마돈나’로 불리기엔 그릇도 공과도 크다. 그렇다고, 그저 ‘섹시 퀸’도 아니다. 넘쳐흐르는 섹시, 그 섹시를 더욱 빛나게 하는 귀여움에서 그치지 않고 당당함과 주체적 여성의 이미지를 엄정화가 가지게 된 데에는 배우로서 연기한 캐릭터의 힘이 있다. 물론 가수로서도 당찬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단순 섹시 퀸이 아님을 보여주었지만, 스토리를 가진 캐릭터의 힘은 엄정화를 더욱 시대가 원하는 여성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유하 감독과 다시 만난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엄정화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관습에 대해 통렬히 비웃는다. 시청률 이상의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서는 부엌데기 주인공이 사랑을 통해 내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을 실감나게 연기했고 여성의 바람은 욕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생을 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줬다. 영화 ‘싱글즈’에서도 자유연애를 지향하고 비혼모를 선택하는 개방적 여성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덕분에 대한민국 여성들은 성과 사랑, 인생에 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받았다.
30년 넘는 세월 속에서 엄정화가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엔터테이너로 여전히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나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은 영향도 있다. 스크린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 도발적 도시 여자를 보여주자마자 바로 시골 아낙이 되어 드라마 ‘아내’에 출연했다. 당당한 정신과 의사로 분한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로 관객을 만난 뒤 3주 만에 연쇄살인마가 된 ‘오로라공주’로 스크린을 물들였다. 영화의 매무새가 헐거워서 아쉬웠지만, 선함을 싹 지우고 영악함만 남은 ‘인사동 스캔들’의 엄정화는 인상적이었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옴니버스영화 ‘오감도’에서 만난, 죽은 남편 황정민과 그의 애인 김효진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아내 역이었다. 엄정화가 지닌 끝을 모르는 지순함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매혹이 한 인물을 통해 발산됐다. 해당 에피소드는 장편 ‘끝과 시작’으로 재편집될 만큼 많은 이들이 사랑했다.
결혼하지 않은 엄정화는 아내 역뿐 아니라 엄마 역이 무척 잘 어울린다. 이번 ‘오케이 마담’에서도 요즘 말로 ‘찐엄마’로 보인다. 그 시작을 본 건 영화 ‘해운대’였다. 자존심 다 버리고 오로지 아이를 위해 전 남편(박중훈 분)에게 도움을 청할 때만 해도 광고대행사 이사로 보였다. 차오르는 물과 함께 죽음이 덮쳐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가락뼈 골절되고 가슴뼈 금 가며 처절하게 연기한 보람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함께 울었고, 나는 죽어도 자식만은 살려야 하는 같은 마음이었다.
억척스레 열심히, 무턱 대고가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향해 진보해 온 엄정화는 영화를 이끄는 단독주연 배우가 됐다. ‘베스트셀러’가 시작이었고, ‘미쓰와이프’에 이어 ‘오케이 마담’ 역시 그러하다. 여자 배우 출연할 작품 많지 않다는 시절, 그것도 타이틀 롤. ‘신세계’ ‘검사외전’ ‘아수라’ ‘보안관’ ‘공작’ 등 거친 사나이들의 세계를 스크린에 옮겨온 사나이픽처스가 공동제작한 영화라 더욱 반갑다. 전도연이 주연한 ‘무뢰한’에 이어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끄는 사나이픽처스의 두 번째 영화다.
‘오케이 마담’에서 엄정화는 그야말로 날아다닌다. 서핑과 요가로 다져온 몸에서 나오는 근력이 다부진 액션에 믿음을 준다. 엄정화는 웃음기 없는 ‘예스 마담’ 양자경이 아니다. 한국의 ‘오케이 마담’은 못 하는 것 없고 안 되는 것 없는데 웃음마저 책임진다. 웃음소리 없기로 유명한 기자시사회에서 ‘키득키득’에서 ‘푸하하’까지 웃음이 이어졌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나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마녀의 연애’에서 과시해 온 미워할 수 없는 허당 매력과 푼수 끼가 제대로 힘을 쓴다. 엄정화가 납치된 비행기 안에서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배우 박성웅, 이상윤, 배정남, 이선빈이 도왔다.
‘오케이 마담’ 속에서 미영은 시장통에서 꽈배기를 튀겨 판다. 그렇게 잘 튀길 수가 없고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문득 신인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중학교 음악선생님이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불과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어머니를 돕고 동생을 살피며 둘째 딸이지만 맏딸처럼 듬직했던 엄정화. 어머니가 홀로 자식 넷을 키우기 위해 떡볶이를 볶고 튀김을 튀길 때, 착한 딸은 하교 후에 엄마에게로 갔다. 하필 예쁜 얼굴에 쏟아진 뜨거운 기름. 엄정화는 밝게 말했다.
“기름은 물하곤 다르거든요. 너무 다행이죠. 물이었으면 흉이 다 남았을 텐데 기름에 덴 건 딱지 떨어지니까 말끔하지 뭐예요.”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엄정화가 현장에서 어떤 배우였는지 묻자 “배우? 천사예요, 천사. 힘들다는 것도 없고 까탈은 당연히 없고 뭐든 다 본인이 죄송하다 해요. 시키지 않는 것까지 스스로 하더라고요. 정말 보기 드문 착한 분입니다. 엄 배우님을 위해서라도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관객을 위해서 ‘오케이 마담’을 권한다. 정말 오랜만에 코로나19발 시름 잊고 계속 웃을 수 있다. 오케이 마담, 오케이 엄정화, 오케이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