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의 망각…“전투는 군인이 전쟁은 국민이 한다”
입력 2020.07.14 08:00
수정 2020.07.14 09:00
‘내 탓 프레임’, 친일과 토착왜구·전(前) 정부와 야당·보수 언론
성찰 없이 ‘네 탓’만으로 부동산 정책 23전 23패 못 막는다
국회 18개 상임위원회(단, 1개 정보위원장은 미선출 상태)를 독식한 집권 여당이 겉과는 달리 연이은 정책 실패를 만회할 돌파구를 쉽사리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정책을 놓고 다툴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적(敵)만 있지 상대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 생태계의 동력은 타협인데 그 상대를 잃었으니 어디서 불쏘시개를 찾을지 국민은 불안하다. 이들에게 적어도 4년 동안의 정치 생태계 운영을 맡겨야 하는 국민들이 너무도 안쓰럽다. 히틀러의 나치를 소환해보고 러시아의 푸틴을 떠올리면서 닮은꼴 정치로의 후퇴가 연상되는 건 비단 무력감 탓만은 아니리라.
정책도 살아 숨 쉬면서 생태계를 형성하는 유기체의 결합이다. 시장을 관찰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그 통찰의 결과를 정책으로 내놓아야 비로소 시장이 작동하고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무자비하게 세금 걷어 끼리끼리 나누고 뿌려대는 게 정치였던가.
국제정치와 시장과 민심을 올바로 읽기는커녕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오만, 우리 편과 적(敵)밖에는 없는 정치 생태계의 앞날은 고사(枯死)뿐이다. 숲 생태계를 거닐어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지혜일 터. 그 폐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니 적응보다는 대응이요 시간이 흐르면 저항으로 바뀌는 게 역사 순환의 이치다.
하지만 성찰과 통찰의 과정도 없이 ‘네 탓’만 해온 그들의 심리 상태를 가늠해보자.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의무보다는 권리를 강변하고, 적응보다는 저항만 해왔다. 정치 세력화한 후에는 반대만 하는 집단체제를 형성했다. ‘내 탓’이란 진솔한 성찰 끝에 나오는 깨달음의 결과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옳았지 잘못이 없다는 무오류의 함정에 갇혀 있다. 다름 아닌 무오류의 오류 탓이다. 그러니 잘못에 이르게 한 희생양을 찾거나 책임질 대상을 물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대상은 보수 언론이 되거나 때로는 검찰이 되기도 한다. 논리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질 땐 멀리서 프레임을 찾는다. ‘토착왜구’가 그것이고, 역사의 한 축을 빌어 ‘적폐’로 분칠도 한다.
‘내 탓 프레임’은 크게 세 가지인데, 친일과 토착왜구 탓, 전(前) 정부와 야당 탓, 보수 언론 탓이 그것들이다. 역사성을 띠거나 장기적으로 봐야 할 경우엔 토착왜구나 친일로, 시장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거나 정책 실패엔 이전 정부와 야당의 탓이요, 청와대와 여당의 행태를 지적하면 가짜 뉴스거나 보수 언론 탓으로 돌리는 게 버릇처럼 체화돼 굳어버렸다. 어쩌면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언론을 대하거나 SNS를 할 때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로 대응하라는 무언의 지침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숱한 정보 속에서 용케도 가짜 뉴스를 잘 찾아내는 선구안을 지녔다. 수년 전 또는 몇 달 전 자신들이 했던 말은 기억을 잘 못하는 편리함도 한몫 거든다. 조직의 리더들은 집단의 총수가 흔드는 깃발에 따라 일사불란한 몸짓으로 헤쳐모이면서 똑같은 언사들을 대본을 본 것처럼 섞어 내뱉는 데 익숙하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신념도 내팽개치고 양심은 뒷간에 둔 채 깃발 따라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과거엔 협객 같은 정치인들이 있어 난제를 앞에 두고 의사당 내에서는 다투다가도 어두워지면 타협의 물꼬를 텄다던데, 이젠 전설이 되었는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엔 오만과 독식밖엔 다른 협상 카드가 없는지 아니면 찾지 않는지 탄식만 나올 뿐이다.
그들의 주력부대는 또 다른 전선에서 기동력을 발휘한다. 2년 또는 4년 후가 걱정스러운지 앞문은 철통같이 막으면서 뒷문을 터놓는 치밀함도 보인다.
공수처 설치는 이 정권의 사후보장보험으로 지칭되기도 하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보험사원들이 훗날 어떤 행태를 취할지 과연 보험금을 지불해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히 하는 짓거리로는 밉상들인데 한편으론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기에 가엾을 따름임을 어쩌랴. 이미 협치는 짓밟혔으니 ‘더불어’ 자체가 위선이며, 국회의 상임위까지 독식했으니 튼실한 기반으로 독재형 민주주의의 길에 나선 것인가?
정부는 지난 7월 10일 또 하나의 부동산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다주택자의 취득세․보유세․양도세 부담을 두세 배씩 올리는 게 골자다. 이중과세의 문제가 거론되고 물량이 잠김으로써 거래가 실종되면 증여라는 우회로 쪽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온다.
이번 대책까지 포함하면 문재인 정부의 22차례에 걸친 부동산 정책을 볼 때, 한 해에 평균 일곱 개의 대책을 내놓았던 셈이다. 가히 정책이 아니라 지침 수준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정책의 비전과 목표, 그리고 정책의 기본철학부터가 잘못됐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전쟁을 하려면 적이 누구며 그들의 전술과 전략은 어떻게 진화해 가는지 예측하고 길목을 지키는 정책을 무기로 삼는 게 순서다. 허세와 오기와 증세만으로는 시장의 자유와 선택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민심을 얻어야 하는데 출발부터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시장과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공급의 확대 없이 수요만 누르는 정책은 일시적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정부는 귀를 닫고 있다.
투기를 잡겠다고 전쟁을 선포하기에 앞서 부동산 시장의 구조와 생리, 그리고 민심을 먼저 읽어내야 한다. 어떤 행위부터가 투기인지 어떻게 하면 투기꾼이 되는지조차 모호하다. 이번 생애에 집 한 채를 갖겠다는 가존(家存)전략 마련에 고심을 하는 국민이 대부분이다. 절망이 깊어지는 국민을 적으로 삼는 일은 그야말로 독재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보완책으로 다음엔 증여취득세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니, 결코 바라지는 않건만 부동산 대책 23전 23패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조선의 바다를 지켜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신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첫 번째 전투인 옥포해전부터 마지막 노량해전에 이르는 전투에서 충무공이 쌓은 23전 23승은 하늘이 내리고 운이 따른 전과일까? 충무공은 ‘적(敵)의 적(敵)으로서의 나’를 놓고 새벽이 동터 올 무렵까지 고심 속에 전략을 구상했다. 평상시에는 남해안 곳곳의 지형과 해류를 점검하고 적진을 탐망하면서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적의 동태와 현장을 올바로 읽고 세운 전략에 맞춰 진법 훈련을 시키니 패전은 있을 리 만무했다.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국민이 하는 것’임을 가슴에 담았던 까닭이다.
글/임기철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