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전수조사 예고…금융위vs금감원 갈등 '도화선'
입력 2020.06.29 06:00
수정 2020.06.28 21:08
은성수 '전수조사' 카드에 금감원노조 "원죄 덮으려는 술수"
'책임공방' 커지며 '금융감독체계 개편론'으로 확전할 수도
'사모펀드 전수조사'를 둘러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갈등이 또 다시 표면화되고 있다. 잇따른 사모펀드 환매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가 사모펀드 전수조사 카드를 꺼내자 금감원은 책임전가 아니냐며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노조는 최근 옵티머스 자산운용의 사모펀드 사기판매 의혹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의 사모펀드 전수조사 추진 계획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금감원 노조는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원인은 금융위의 무분별한 규제완화 때문"이라며 "투자요건 완화, 인가 요건 완화, 펀드 심사제 폐지로 잇단 사모펀드 사태는 예견된 재앙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 상황에서 전수조사를 언급한 것은 비난의 화살을 금감원으로 돌리고 금융위의 원죄를 덮으려는 얄팍한 술수"라고 비난했다.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 성명에 별도의 해명이나 입장을 내지 않았다. 노조의 성명 내용에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노조의 주장은 윤석헌 금감원장이 학자시절부터 주창해온 '금감원 독립성 강화' 지론과 궤를 같이한다. 노조는 "최악은 펀드 사전 심사제가 과도한 규제라며 사후 등록제로 변경한 것"이라며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고 경고할 중요한 장치가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실제 금융위는 지난 2015년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크게 낮추고, 사모 운용사 진입 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하는 등 관련 규제를 대폭 풀었다. 정부의 사모펀드 활성화 기조에 발을 맞춘 규제 완화책이었다.
이에 금융권에선 금융위와 금감원 간 갈등의 도화선에 불이 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금융위는 감독 부실을 사태의 원인으로 돌리고, 금감원은 규제 완화 정책에 책임이 있다며 서로 '네탓'을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운용사 52곳의 사모펀드에 대해 서면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 펀드의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3일 전수조사 계획을 언급하며 "과거 당국 조사에서는 운용사가 제출한 서류만 갖고 조사했는데 이번엔 실물과 대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조사가 허술했다는 뜻이다.
해묵은 두 기관 갈등…대형금융사고 때마다 '책임공방' 수면위로
두 기관의 갈등과 봉합은 금융권 제재, 주요직 인사 등 굵직한 이슈 때마다 반복돼 왔다. 최근엔 앙금이 가라앉으면서 해빙무드쪽에 가까웠다. 지난 5일엔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감원장이 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두 기관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장면을 연출했다.
'밥먹는 자리'는 인사문제로 엉킨 갈등의 실마리를 두 수장이 풀어보자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은 위원장이 윤 원장에게 먼저 제안하면서 만들어졌고, 오찬 장소도 금감원이 위치한 여의도 인근으로 잡았다. 금융위가 금감원의 상급 기관이지만, 은 위원장이 직접 여의도로 향하며 미담(美談)의 조건을 쌓았다. 그러나 그간 두 기관의 오랜 갈등은 식사자리 미담으로 털어내어질 사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모펀드 환매 사태는 두 기관의 책임공방을 떠나 윤 원장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펼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 원장은 금융학자 시절부터 금감원의 독립성 확보를 줄곧 주장했고, 취임사에서도 '금감원 독립'을 외쳤다. 윤 원장은 금융위가 현재처럼 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을 함께 가진 것이 문제라며 이를 '액셀(정책)과 브레이크(감독)가 붙어있는 자동차'에 비유하기도 했다.
최근 잇따른 사모펀드 사태 역시 윤 원장의 시각에선 금융당국이 액셀과 브레이크 동시에 밟은 데에서 비롯된 사고로 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임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윤 원장이 이번 사안을 지렛대 삼아 '감독체계 개편론'을 띄울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원장의 평생 소신이었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임기 중에 남기고 가고싶지 않겠나"라며 "요즘같은 분기위가 윤 원장이 과거 써놓은 저서를 다시 펴볼 때"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불씨가 금융위와 금감원이 감독체계 개편을 두고 사활을 건 입지경쟁을 벌어야하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