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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원의 백미러] 쌓여가는 증권사 삭제 보고서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0.06.29 07:00 수정 2020.06.29 08:54

증권사 3곳 보고서 돌연 회수·수정...지배구조개편·M&A 이슈 다뤄

기업과 이해관계 얽히며 잇딴 내용 검열, 투자자 투자판단 흐려져

여의도 증권가 전경ⓒ뉴시스 여의도 증권가 전경ⓒ뉴시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독립성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최근 증권사 3곳의 리포트가 돌연 삭제·수정됐다. 투자자들에게 투자 판단을 제공하는 보고서에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그 기능을 잃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KTB투자증권은 이달 초 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이 합병하는 방식의 지배구조재편 가능성을 거론한 보고서를 삭제했다. 니콜라 주가 급등으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가진 에이치솔루션의 지분 가치가 커져 그룹 지주사격인 ㈜한화와 합병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니콜라 지분을 확보한 한화에너지는 에이치솔루션의 100% 자회사다. 당시 보고서는 현재 지분구조를 점검하고 합병 가능성을 가정하는 데 불과했지만 사측의 부정과 함께 회수 조치되며 뒷말이 일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지난달 말 롯데케미칼의 두산솔루스 인수 관련 리포트를 삭제하고 내용을 수정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일 진행된 두산솔루스 예비입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 보고서는 해당 업체의 관련 기술이 크게 메리트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동박·전지박에 멀티플 30배를 적용한 인수 금액 1조원이 비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후 보고서는 “절대적 밸류에이션이 싼 상황은 아니다”라는 조심스러운 문장으로 대체됐다.


앞서 지난달 초에도 DB금융투자가 삼광글라스 합병안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냈다가 삭제했다. 당시 DB금융투자는 삼광글라스에 대해 군장에너지ㆍ이테크건설 투자부문과 합병비율이 적절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 삼광글라스 소액주주들은 합병비율이 불리하게 산출됐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삼광글라스 측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는 공시를 내 사측에서 합병비율을 조정하기도 했다. DB금융투자는 단지 수치 검증이 더 필요해 리포트를 회수했다고 밝혔다.


세 증권사 모두 공식적으로는 자율적인 조치라고 밝히고 있지만, 모두 기업의 지배구조개편이나 인수합병(M&A)이라는 예민한 이슈를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당 기업과의 관계성에 따라 보고서를 회수한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잇따르는 이유다.


그동안 보고서에 대한 대기업의 항의와 갑질, 이에 따른 보고서 정정은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윤을 내야하는 증권사 입장에선 중요한 고객인 기업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앞서 모 기업 관계자는 기자에게 “작성한 보고서 내용에 실수가 있었다고 증권사에서 연락을 해왔다”며 관련 내용 삭제를 요청했다. 확인 결과, 해당 기업이 먼저 증권사에게 항의를 해 보고서를 내리기로 협의한 것이었다. 내용도 실수가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의견 개진으로 판단됐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소신 있는' 평가다. 물론 근거 없이 기업 신용도를 훼손하는 보고서는 기업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책임감이 막중한 만큼 세심한 분석이 요구된다. 그러나 기업의 눈치를 보는 보고서 역시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검열된 보고서는 증권사와 애널리스트의 존재가치를 흔들고 투자자들의 공정한 투자환경을 가로막는다. 애널의 독립성을 보장할 금융당국의 대책 마련 등 고민이 필요한 때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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