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손해보기 직전에 브레이크 밟았다
입력 2020.06.25 04:00
수정 2020.06.25 05:13
김여정 담화 이후 20일 만에 '숨고르기'
대남확성기 철거·대남 비방 기사 삭제까지
추가 행동 득실 따져 '보류 카드' 꺼낸 듯
일각선 큰 의미 부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북한이 대남 공세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비판을 통해 대남 공세에 불을 붙인지 20일 만이다.
연락선 차단, 연락사무소 폭파, 민경초소(감시초소·GP) 재주둔 등을 차례로 이어온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통해 대남 압박에 제동을 건 모양새다.
실제로 해당 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에 대한 '보류' 조치가 결정된 이후 대내외적 후속 조치들이 잇따랐다.
서호 통일부 차관은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한이 최전방 지역에 재설치했던 대남확성기 시설을 모두 철거했다고 밝혔다. 관련 사실은 해당 간담회에 참석했던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기자들에게 공개됐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2일부터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철거됐던 대남확성기를 전방 지역 30여 곳에 재설치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보류 조치 이후, 북한 대외선전매체들은 온라인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대남 비방 기사를 삭제하기도 했다. 조선의 오늘·통일의 메아리·메아리 등의 선전매체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이날 새벽에 보도된 13건의 대남 비판 기사가 반나절도 안 돼 모두 삭제됐다.
삭제된 기사의 상당수가 대남전단 살포를 위협하는 내용이었던 데다 북한 주민이 직접 접하는 노동신문에도 전단 대남 비난 기사가 실리지 않아, 북한이 예고했던 대남전단 살포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보류 결정, 현실적 상황판단이 영향 미친 듯
제재 완화 원하는 北, 물러날 이유 없다는 관측도
대남 강경 기조를 이어온 북한이 '보류 카드'를 꺼낸 데는 현실적 상황판단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추가 군사행동을 감행했을 경우 예상되는 득실을 저울질해 '진행'도 '철회'도 아닌 '보류'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통화에서 "파죽지세로 나가다 보니 다음에 취할 조치가 마땅치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며 "군대를 금강산·개성 지역에 보낸다는 건 비용도 많이 들고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 부원장은 "보류라는 건 (군사행동을) 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한국이나 미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겠다는 얘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 군부는 △금강산·개성 일대 군대 재주둔 △민경초소 재건 및 재진출 △접경지역 군사 훈련 재개 △대남전단 살포 보장 등 4가지 후속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대남 군사행동이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와 맞물린 만큼 북한이 수위 조절에 나섰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이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체결된 군사합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보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평가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통화에서 "대남전단과 확성기가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돈이 드는 군대 이동 역시 추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접경지역 군사 카드(GP 재건 및 군대 재주둔)도 군사합의가 북한에 유리하게 체결돼 (파기로 이어질 경우) 손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의 보류 조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지낸 신원식 미래통합당 의원은 통화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은 결국 제재해제"라며 "보류 조치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계속 강하게 밀고 왔으니 한 템포 쉬어가는 것으로 본다. 북한이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