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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넥스트노멀] 포스트 헬금융에 대비하라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06.19 06:00 수정 2020.06.18 10:24

저성장·저금리·저물가 심화…금융권 곳곳 부실 가시화 우려

금융사 수익성 악화 불가피…성장보다 기초 체력 강화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계기로 국내 금융시장 환경이 유래 없는 최악의 조건에 놓이게 될 것이란 염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픽사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 금융시장 환경이 유래 없는 최악의 조건에 놓이게 될 것이란 염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저성장과 저금리, 저물가 등 이른바 3저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금융권 곳곳에서 부실 징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같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수익성 악화는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대신 기초 체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나라 경제가 빠른 회복력을 보이지 못한 채 장기적으로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는 L자형 성장 흐름을 보일 것이란 관측이 점차 우세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경제 위기 직후부터 빠른 회복세를 나타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그와 같은 복원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다.


이에 따른 3저 현상 중에서도 우리나라 금융권에 가장 큰 리스크가 될 것으로 꼽히는 악재는 심화하는 저금리 기조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0%대까지 추락한 가운데 이런 제로금리 시대가 고착화되면서 통화정책을 통한 약발이 예전만큼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코로나19 이후 잇따라 이어진 하향 조정으로 현재 0.50%까지 급락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한은의 통화정책 여력이 사실상 바닥났다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는 기준금리가 실질적인 하한선을 뜻하는 이른바 실효 하한에 이미 거의 도달했다는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 실효 하한이란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금리를 더 인하해도 효과가 없는 한계선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보다 밑으로 금리를 낮추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환율이 불안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김영익 서강대학교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수요 측면의 충격으로 과감한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었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수요뿐 아니라 공급에서도 충격이 발생해 잠재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잠재 경제정상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뉴시스

이 같은 저금리 환경 아래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금융권에서는 우선 채권 시장을 둘러싼 불안이 감지된다. 기업의 부도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신용 위험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기업 부도리스크를 보여주는 지표인 신용등급 BBB-와 AA- 회사채 간 금리 차는 이반 달 6.3%까지 높아지며,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5월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 코로나19로 매출 감소와 신용등급 하락에 직면한 기업들이 회사채 차환에 난항을 겪으며 위험에 빠지게 되면 금융권도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경고다.


아울러 처음 마주한 0%대의 저금리로 인해 금융사들의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은행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장 금리라 낮아질수록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자 마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기준금리 내리막이 본격화한 지난해 이미 국내 19개 은행들의 평균 순이자마진(NIM)은 1.89%에서 1.71%로 0.18%포인트 하락했다. NIM은 예금과 대출의 이자율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중심으로 한 은행의 수익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수치가 낮아질수록 예대 마진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가 장기적으로 은행의 건전성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염려가 새 나온다. 앞서 지난해를 기점으로 저금리 주기에 본격 진입하면서 대출은 줄고 부실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걱정이다. 또 기준금리가 더 떨어질 것이란 위협이 계속되면서 시장금리가 줄곧 이를 밑돌고, 이는 결국 은행 NIM을 꾸준히 갉아먹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눈에 띄게 불어난 중소기업 대출에 잠재된 리스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금융권의 어깨를 짓누르게 될 것이란 걱정도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2014년 대기업 구조조정 이후 금융권에선 중소기업과 대기업 여신 간 반비례 흐름이 짙어져 왔다. 실제로 2015년부터 지난해 사이 중소기업 대출은 604조원에서 776조원으로 172조원 증가한 반면, 대기업 대출은 435조원에서 393조원으로 42조원 감소했다. 이 와중 기업 여신에서 불거진 신규 부실 가운에 중소기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2%에서 75%로 크게 확대된 실정이다.


여신뿐 아니라 투자 시장도 재점검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코로나19 위기가 가시화하자마자 외국인 투심이 등을 돌리며 국내 시장에 내재돼 있던 불확실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되면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다음 달인 4월까지 2개월 간 국내 금융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투자자금은 약 15조원에 달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유출이었다. 이 같은 자본 유출에 환율 시장도 함께 출렁였다.


이와 함께 어느 금융권보다 큰 위기감을 느끼는 곳은 보험업계다. 기준금리가 떨어진 만큼 투자 수익률도 악화가 불가피해서다. 고객들이 낸 보험료를 굴려 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내야 하는 보험사들에게 기준금리 하락이 치명적인 이유다. 보험업계의 실적 부진은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보험사들이 거둔 당기순이익은 5조3367억원으로 전년(7조2863억원) 대비 26.8%(1조9496억원) 급감했다.


이 와중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은 시행이 다가오면서 보험업계에서는 정말 문을 닫는 보험사가 나올지 모른다는 비관론까지 퍼지고 있다. 2023년 IFRS17이 적용되면 기존 원가 기준인 보험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뀌게 된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보험사들이 최근 자본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금융권에서는 이제 위기의 시대에 맞춰 새로운 판을 짜야 할 때라는 진단이 나온다. 막연히 성장이 계속될 수 있다는 장밋빛 낙관을 버리고,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기반을 닦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송수한 NH농협금융지주 금융연구소장은 "코로나19 충격 이후 3저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하고,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내수 경기 둔화와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른 수출 중심 체제 리스크가 증가할 것"이라며 "은행들로서는 이에 따른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NIM의 수준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전했다.


이어 "신용 시장의 안정화와 코로나19 이후 금융권의 건전성 강화를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유동 자본이 투기성 자산에 몰리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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