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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폭풍] 집중투표제로 숨죽이는 금융권…금융지주도 적대적 M&A 위기

이나영 기자 (ny4030@dailian.co.kr)
입력 2020.06.19 06:00 수정 2020.06.18 10:23

파벌싸움·기업사냥꾼 악용 우려…칼 아이칸·엘리엇 대표 사례

“투기 세력들의 기업 경영권 개입 성격 강해…의무화 반대”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에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제외됐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에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제외됐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악화된 경영환경으로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를 개선할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을 외치면서도 정작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 개선은 외면하고 있으며 과도한 입법으로 오히려 기업들의 경영 의지를 꺾으려 하고 있다. 기업들의 한숨이 깊어지게 하는 정치와 경제의 난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에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제외됐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177석을 확보해 단독 법안처리도 가능해진 거대여당이 규제 법안을 밀어붙일 수 있어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한 주에 1표만 주지 않고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집중투표제로 이사 3명을 뽑을 때 한 주를 가진 주주는 3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 표를 3명 후보 중 한 후보에게 집중해 투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소수주주의 권한이 세져 오너일가·대주주 측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집중투표제는 1870년 미국 일리노이주 하원의 의원 선임을 위한 투표방식으로 최초 도입됐다.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곳은 러시아, 칠레, 멕시코 등 3개국뿐이다. 미국은 1950년대, 일본은 1970년대에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폐지했다. 주주 간 파벌싸움과 경영 효율성 훼손 등의 부작용에 따른 것이다.


금융권에서도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주주 간 파벌싸움 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현대자동차를 공격했던 것처럼 해외 투기자본이 기업의 경영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4월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보통주 10억 달러 어치(당시 약 1조5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요구했다. 또한 8억3000억원에 달하는 고배당을 제안하며 경영 참여 의사를 내비쳤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만들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해 추진하고 있었지만 엘리엇의 반대에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지난해 3월 열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정기 주총에서는 엘리엇이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과 배당 안건 등이 표 대결 끝에 모두 부결됐다. 당시 엘리엇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 선임까지 요구했다. 이후 9개월 만에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지분을 전량 처분하고 철수했다.


2006년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타 헤지펀드와 협력해 KT&G 주식 6.59%를 매입한 후 집중투표제를 이용해 사외이사 1명을 이사회에 진출시킨 것도 악용 사례로 꼽힌다.


칼 아이칸은 KT&G에 장기사업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회계장부 제출,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의 기업공개 등을 요구했다. 사측이 요구에 따르지 않자 칼아이칸은 적대적 M&A 카드를 내밀며 경영진을 압박했다.


그 결과 KT&G는 부동산을 제외한 자회사 매각과 2조8000억원 가량의 거금을 배당금으로 썼다. 이후 칼 아이칸은 약 1500억원의 차익을 얻은 후 철수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집중투표제가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투기 세력들이 기업 경영권에 개입하는 진입로 성격이 강하다”며 “특정 세력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나영 기자 (ny403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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