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 끈 한화, 1승보다 중요할 기다림 미학
입력 2020.06.15 07:52
수정 2020.06.15 07:55
주말 두산전에서 끝내기 안타로 18연패 탈출
팀의 미래 책임질 지도자와 선수 육성 나서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던 한화 이글스가 어렵게 18연패 사슬을 끊으며 급한 불을 껐다.
한화는 14일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과의 2경기(서스펜디드 포함)를 모두 쓸어 담으며 2연승을 내달렸다.
지긋지긋하던 18연패 부진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한화는 지난달 22일 NC전 5-3 승리를 끝으로 깊은 연패 수렁에 빠져들었다. 타자들은 점수를 뽑지 못했고 마운드는 약속이라도 하듯 집단 부진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안 되는 팀’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연패를 끊겠다는 선수들의 의지가 대단했다. 특히 베테랑들이 모처럼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김태균은 이번 두산과의 3연전에서 마수걸이 홈런 포함 타율 0.500의 맹타를 휘둘렀고, 이용규는 악착같은 슬라이딩과 몸을 사리지 않는 사구로 어떻게든 출루하겠다는 의지를 후배들에게 전달했다.
한화는 두산과의 2경기를 모두 마친 뒤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구단 측은 “팬 여러분의 응원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최근 계속 되는 연패와 무기력한 경기로 허탈감과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현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통감하며 빠른 시일 내 팀의 정상화를 위한 재정비과 쇄신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면서 “뼈를 깎는 각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18연패 기간 한화는 많은 문제점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얇은 선수층이라는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일부 주전 선수들이 부상 또는 부진으로 빠지면 이를 대체할 자원은 사실상 전무했다.
특히 모두를 놀라게 할 깜짝 신인이 등장하지 않는 게 한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한화는 2006년 MVP까지 싹쓸이했던 류현진 이후 신인왕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류현진은 노쇠한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의 대를 이을 에이스로 많은 각광을 받았고, 기대대로 잘 성장해줬다.
그러나 류현진 등장 이후 한화는 미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화는 2010년대 초반 암흑기가 찾아오며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전면 드래프트 시절에는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졌고, 이후 연고지 우선 지명으로 전환된 뒤에도 2차 지명서 상위 순번에 위치하는 경우가 잦았다. 매년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지명했으나 리그서 경쟁력 있는 선수로 성장한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구단은 이번 사과문에서 뼈를 깎는 각오로 쇄신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FA 등 외부에서 자원을 영입하는 방안도 있으나 이는 현재 한화에 어울리는 ‘솔루션’이 아니다. 포지션 곳곳에 난 구멍을 메우는데 한계가 있으며 이미 2010년대 중반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사례까지 갖고 있다.
결국 구단 자체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길 외엔 답이 나오지 않는 한화 이글스다. 선수들의 성장이 더디다면 문제점은 무엇인지, 잘 키운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부여했는지, 육성이 어렵다면 코칭스태프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는지를 곱씹어 봐야 한다.
이미 KBO리그 최다 연패까지 경험한 상황에서 당장의 1승이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한화 팬들도 인지하는 부분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리빌딩을 진행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내고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며 기다려야 한다. 한화 구단이 의리를 지켜야 할 대상은 일부 코치, 선수들이 아닌 바로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