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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 기자의 적신호] 예술가의 열정을 악용하는 사람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입력 2020.06.14 07:00 수정 2020.06.24 01:39

대학로 건물주, 극장에 유독 높은 월세 요구 횡포

공연업계 "다른 지역 극장 운영 상상하기 어려워"

한국 공연의 메카 대학로의 공연장 안내도. ⓒ 뉴시스 한국 공연의 메카 대학로의 공연장 안내도. ⓒ 뉴시스

반경 1km 내에 170여 개의 소극장이 몰려 있는 한국 공연의 메카 대학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극장이 몰려 있는 곳으로 국내 무대예술인들에겐 삶의 터전이자, 꿈과 희망의 상징이다.


하지만 최근 무대예술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턱밑까지 겨눈 생계의 위협과 매일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오직 무대를 향한 '열정' 하나로 버틴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힘들다"거나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비판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그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그런데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그동안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관행과 악습이다. 그동안 열정 하나로 불이익을 감수해왔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로 맞닥뜨린 비참한 현실 속에서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근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소극장을 운영하는 예술가들이고 말했다.


임 이사장에 따르면, 대학로 소극장의 월세는 평균적으로 400~500만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150석 이상 규모의 일부 공연장의 월세는 1000만원을 호가한다. 이는 카페나 음식점에 비해 2~3배 높다.


이처럼 건물주들이 소극장에 유독 높은 월세를 요구하는 건, 대학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장기간 공연을 이어가기 어려운 무대예술인들의 상황을 악용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국의 공연문화는 수많은 공연과 공연장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대학로에서 시너지를 발휘하며 발전해왔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일부 대극장을 제외하고, 소극장을 대학로가 아닌 타지에서 운영한다는 건 큰 모험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 된 것이다. 물론, 시장원리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이것이 결국 코로나19 시대 대학로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임 이사장은 "카페라든지, 음식점은 아무리 어려워도 고정적인 수입은 발생하지만, 공연장은 문을 열지 못해 수입이 0원인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도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 한다"고 참담한 현실을 전했다.


소극장의 상당수는 연극인 출신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한다. 무대를 통해 '삶의 이유'를 찾아온 사람들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코로나19란 혹독한 시련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실제로 대학로에는 이미 문을 닫은 소극장도 상당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19에 따른 공연계 고용위기 극복과 경기보강,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일상'을 위해 올해 제3차 추경 예산을 편성했다. 일자리 확충 및 시장 활성화를 위한 쿠폰 발행이 주요 골자였다. 예술위원회는 공연장대관료지원사업을 통해 공연계 지원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대학로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악습과 관행의 고리를 끊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횡포에 가까운 폭리로부터 무대예술인들을 보호하고, 천재지변에 가까운 전염병에 대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방비로 길거리로 내몰린 무대예술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곧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부와 시민들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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