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백스테이지] 음탕하고 무능? 진성여왕을 향한 시선들
입력 2020.06.12 13:24
수정 2020.06.12 15:23
사실과 상상력의 조합, 뮤지컬 '풍월주'
진성여왕을 향한 당대 평가와 오해?
진성여왕은 통일신라 제51대(재위:887~897) 왕이다. 신라 시대를 지배한 3인의 여왕 중 마지막 여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 속 진성은 정치 감각이 부족했던 신라 멸망의 원흉, 혹은 음탕하고 문란한 여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뮤지컬 '풍월주'의 상상력의 배경이기도 하다. '풍월주'는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혼합된 팩션(faction) 사극으로, 실존 인물 진성여왕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는 모두 상상력으로 창조해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작품 속 배경이 되는 바람과 달의 주인이란 뜻의 '풍월주'는 신분 높은 여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접대를 하는 곳, 운루에 모여든 남자들을 말한다. 역사 속 사실이 아닌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운루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열은 핏빛 개혁의 중심에 선 여왕 진성의 절대적인 애정을 받는다. 하지만 진성은 열의 마음이 운루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사담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담을 협박해 둘을 떼어놓으려 한다.
이야기는 열과 사담의 우정과 사랑에 집중한다. 진성은 강제로 떼어질 위기에 놓인 둘의 애절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뿌리는 역사 속 진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성은 주로 무능하고 음탕한 인물로 역사책 속에서 묘사되곤 하는데,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진성왕이 전부터 각간 위홍과 통(通)했다"거나 "2~3명의 미소년을 가만히 불러들여 음란한 짓을 자행하고 그들에게 요직을 줬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임금의 총애를 받는 자들이 방자하게 날뛰고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졌으며, 상벌이 공정치 못하여 기강이 문란해졌다"고도 적혀 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서도 진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제51대 진성여왕이 임금이 된 지 몇 해 만에 유모 부호부인과 그의 남편 위홍 등 3,4 명의 총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해 정사를 어지럽히자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는 내용은 '삼국사기'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진성에 대한 이 같은 평가가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적지 많다. 당대에 세워진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에서 최치원은 "(진성여왕의) 은혜가 바다같이 넘쳤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뮤지컬 '풍월주' 속 진성도 역사책 속 음탕한 진성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는다. 사랑을 얻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냉정한 왕이기도 하지만, 늘 외롭게 살아가는 무기력한 여인이기도 하다. 역사 속 진성에 머물지 않고 작품 속 하나의 캐릭터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풍월주'는 팩션보다는 픽션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감정의 소모가 많은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꾸준히 높여 왔다. 작품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렸던 초연과 달리, 지금은 충성도 높은 관객들의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풍월주'는 지난 2010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선정된 후 2012년 초연 무대를 올렸으며 이번이 다섯 번째 무대다. 8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1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