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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서 뺀 돈 '무이자'로 묵히는 고객들…시중은행은 '어부지리'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06.05 06:00
수정 2020.06.04 22:09

4대銀 정기예금 한 달 새 8조 이탈…코로나보다 저금리에 '발목'

'이자 포기' 요구불예금 13조 급증…비용 부담 축소에 은행 '미소'

국내 4대 시중은행 정기예금 잔액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4대 시중은행 정기예금에서 최근 한 달 동안에만 8조원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으로 시중에 여윳돈이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보다는 지나치게 낮아진 금리가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와중 고객들이 이자를 아예 포기하고 수시입출식 통장 등에 묵히는 현금만 13조원 넘게 불어나면서, 결과적으로 별다른 비용 부담 없이 자금을 융통할 수 있게 된 은행들만 어부지리를 얻는 모습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국내 4개 은행이 보유한 정기예금 잔액은 총 513조6324억원으로 전월 말(521조5373억원) 대비 1.5%(7조9049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봐도 모든 곳들의 정기예금이 일제히 감소세를 보였다. 신한은행의 정기예금이 같은 기간 121조1605억원에서 117조8843억원으로 2.7%(3조2762억원)나 감소했다. 우리은행 역시 122조902억원에서 120조3085억원으로, 하나은행은 132조9344억원에서 131조5941억원으로 각각 1.5%(1조7817억원)와 1.0%(1조3403억원)씩 정기예금이 줄었다. 국민은행의 정기예금 잔액도 145조3522억원에서 143조8455억원으로 1.0%(1조5067억원) 감소했다.


이처럼 은행 정기예금에서 돈이 빠져 나간 배경으로는 우선 코로나19 여파가 꼽힌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정기예금에 묵혀둘 만한 여유 자금이 이전보다 축소됐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런 와중 당장 생활고로 현금이 필요해진 이들이 정기예금을 해지한 영향도 섞여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고객들의 자금 사정 악화가 정기예금을 위축시키는 핵심 요인이 아니란 해석이 나온다. 그보다는 기준금리 추락으로 인해 예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이 미미해지면서 정기예금을 찾는 이들이 줄고 있다는 풀이에 보다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정기예금 대신 수시입출식 통장과 같은 요구불예금에 돈이 쌓이고 있는 현실은 이런 실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든 돈을 찾아 쓸 수 있는 대신 기대 이자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요구불예금에 묵혀두는 돈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 만큼 이자를 포기한 채 표류하는 자금이 많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4대 은행에 누적된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달 말 432조7307억원으로 한 달 전(419조8771억원)보다 3.1%(12조8536억원) 늘었다.


은행별로 봐도 요구불예금의 증가세는 정기예금 감소폭을 메우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하나은행의 요구불예금은 같은 기간 88조5943억원에서 93조425억원으로 5.0%(4조4482억원)나 증가했다. 신한은행 역시 94조1732억원에서 95조6491억원으로, 우리은행은 105조3883억원에서 110조2044억원으로 각각 1.6%(1조4759억원)와 4.6%(4조8161억원)씩 요구불예금 보유량이 늘었다. 국민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도 131조7213억원에서 133조8347억원으로 1.6%(2조1134억원) 증가했다.


앞으로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코로나19의 후폭풍으로 사상 처음 0%대에 진입한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추가 하락하면서다. 이미 주요 시중은행들의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가 1% 미만까지 내려온 와중 이처럼 시장 금리 내림세가 계속되면서, 예금 수요는 더욱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들 입장에선 이런 추세는 나쁘다기보다 오히려 반길만한 소식이다. 얼핏 보면 정기예금 영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악영향을 받을 것 같지만, 그 못지않게 요구불예금이 확대되면서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어서다. 특히 은행이 짊어져야 할 이자 지출이 거의 없는 요구불예금의 특성을 감안하면, 도리어 은행의 짐은 한층 가벼워지게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예적금의 감소는 보통 경기 침체의 대표적인 시그널이지만, 최근 시중 부동자금의 확장세를 고려하면 단순히 불황의 영향으로만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자금 조달 금리를 경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은행으로서는 나쁠 이유가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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