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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의 핀셋] 맹독성 균 보툴리눔 톡신, 이제라도 전수조사 해야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입력 2020.06.04 07:00 수정 2020.06.03 21:53

신고제→허가제로 변경… 소급 적용 가능성도

국내 시판 및 개발 중인 기업 11개에 달해… 검증 필요

오늘(4일)부터는 규제기관에 신고만 하면 됐던 보툴리눔 톡신 균주등록제도가 허가제로 바뀐다. 당국이 이제라도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어서 반가운 일이다. ⓒ각사 오늘(4일)부터는 규제기관에 신고만 하면 됐던 보툴리눔 톡신 균주등록제도가 허가제로 바뀐다. 당국이 이제라도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어서 반가운 일이다. ⓒ각사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에선 탄저균이 테러에 이용돼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른바 ‘백색가루’라고 불리는 분말 형태의 탄저균을 우편물에 넣어 운송한 것인데, 22명이 감염돼 이 중 5명이 숨졌다.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균은 흙 속에 서식하는 세균으로, 생명력이 강해 1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 사람이 감염되면 면역세포에 손상을 입혀 쇼크를 유발하며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그만큼 치명적인 병균이어서 2차대전 때 미국과 소련 등이 생물학무기로 개발되기도 했다. 탄저균 100㎏이 대도시 상공에 살포되면 최대 300만명을 살상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균이다.


'보톡스'로 잘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도 알고 보면 1g만으로도 100만명 이상을 살상할 수 있는 맹독성물질이다. 미국질병관리본부(CDC)는 위험도, 생산 가능성, 무기화 가능성 등을 고려해 탄저, 페스트, 두창과 함께 보툴리눔 독소를 A등급으로 지정한 바 있다.


보툴리눔 독소를 우유에 타는 등의 테러를 일으킬 경우 10~100g 만으로도 수만명에서 수십만명까지 희생자가 발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


이처럼 보툴리눔 톡신 균주가 매우 위험한 데 비해 그동안 우리 규제당국의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기업들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토양, 통조림, 설산 등에서 발견했다고 종이 한 장만 내면 통과가 됐다.


산소가 없는 혐기성 환경에서 자라는 보툴리눔 톡신 균을 눈 덮인 산에 있는 흙에서 찾았다고 하거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땅을 파다 보니 우연히 나왔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걸까. 업계에선 3~4억만 주면 균주를 구해주는 브로커가 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오늘(4일)부터는 규제기관에 신고만 하면 됐던 보툴리눔 톡신 균주등록제도가 허가제로 바뀐다. 당국이 이제라도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어서 반가운 일이다.


이런 제도가 앞으로 균주를 등록할 업체에만 적용되는 건 아닐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소급적용을 골자로 하는 약사법 76조가 개정·시행됐기 때문이다. 당국이 기존에 등록을 마친 균주에 대해서 전수조사를 벌일 근거가 될 수 있다.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미용 목적이 아니라도 800개 이상의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약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전세계 톡신 시장은 59억 달러(약 7조원) 규모이며, 치료용 시장은 32억 달러(약 3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유망한 산업인 만큼 규제당국이 더욱더 투명하고 철저하게 균주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16년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보유한 기업들의 균주 기원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모 제약사 관계자가 한 말이 있다. 그는 한 기자회견에서 “국가기관도 요구하지 않는 기업 비밀정보(균주 염기서열)를 일개 기업이 공개를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균주 기원을 비공개로 두기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 기업이 외부에 공개하기 꺼려한다면 당국에만 비공개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은 다양하게 모색해 볼 수 있다. 이 정도는 '청'으로 승격된 질병관리본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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