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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편집앨범 권리와 횡포③] 창작자 스스로 목소리 내라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입력 2020.05.26 16:50
수정 2020.05.27 10:47

신대철, 조용필 저작권 문제 공론화

도의적 책임 유도·문제 의식 환기 소득

신대철은 저작권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 뉴시스

"조용필 선배님이 지구레코드에 모든 저작권을 빼앗긴 슬픈 일이 있었다."


2013년 록그룹 시나위 리더 신대철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일부다. 이 글은 그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형 사건이 됐다.


사연은 이랬다. 조용필은 1986년 지구레코드 임모 회장과 음반 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임 회장이 계약서에 '창밖의 여자' '고추잠자리' 등 31곡에 대해 '저작권 일부 양도' 계약을 슬쩍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이 허술했고, 음악인들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때였다. 그 계약 이후 31곡에 대한 복제배포권과 유무형복제권을 임 회장이 가져갔고, 조용필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임에도 공연할 때마다 임 회장에게 저작권을 지불해야 했다.


조용필은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이며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2004년 패소했다. 조용필 측은 "86년 당시 저작권에 대해 이해하고 있던 가요 관계자들은 극소수였다"며 "특히 곤궁한 처지에 있는 가수나 작곡가는 저작권이 향후 여러 파생 상품을 낳을 것을 모르고 급하게 계약한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조용필의 매니저였던 유재학 씨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복제 및 배포권을 넘긴다'는 조항을 '판권을 넘기는 것'으로 이해했지, 악곡 전체에 대한 배타적 권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음반사들이 작위적으로 찍어내는 편집앨범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가왕'조차 손쓸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은 다른 가수들에게도 절망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신대철의 경우처럼, 이를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다면 얼마든지 문제를 슬기롭게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신대철의 페이스북 글은 누구도 관심이 없었던 저작권, 불공정계약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절대적인 원동력이 됐다.


효과도 있었다. 지구레코드는 여론의 압박과 팬들의 불매운동이 계속되자 결국 2014년 2월 조용필의 노래 31곡에 대한 복제권 및 배포권을 원저작자인 조용필에게 이전한다는 내용의 공증서류를 접수했다. 긴 법정공방에도 되찾아오지 못했던 조용필의 권리를 여론의 힘으로 되찾아온 것이다.


음반 시장이 음원 중심으로 바뀌면서 음반 발매로 인한 갈등은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음원을 발매하는 과정에 아티스트의 의사는 무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OOO에서 듣기 좋은 음악' 'OOO에 좋은 음악' 등 각종 편집앨범들이 여전히 셀 수 없이 쏟아지고 있다. 상당수는 무명 가수들의 목소리로 부른 음원이 실리기도 한다.


서태지. ⓒ 뉴시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을 멀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창작자들의 적극적인 목소리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수록 또 다른 피해 사례를 막을 수 있고, 이는 결국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음반사는 계약서를 근거로 재산권을 주장하지만, 당시엔 법적 지식의 불균형 속에 이루어진 불공정 계약이었다"며 "도의적인 책임 의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적인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며 "잘못된 관행이나 불공정계약이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나비효과로 이어진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태지는 2001년 패러디 가수 이재수가 '컴백홈(Come Back Home)'을 자신의 동의 없이 리메이크하자 2002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전격 탈퇴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가요계에선 리메이크 시 원곡 가수와 작사·작곡가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로 정착됐다. 제2의 서태지, 제2의 신대철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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