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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우리 그냥 기부하게 해주세요!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0.05.22 10:54 수정 2020.05.22 11:58

정의연 논란에 죄 없는 현대중공업 곤욕

'기부=리스크', 기업 기부문화 위축 우려

정의기억연대가 지정기부금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로 운영하다 지난달 23일 건물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반납 절차가 진행 중인 경기도 안성시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문이 지난 17일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가 지정기부금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로 운영하다 지난달 23일 건물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반납 절차가 진행 중인 경기도 안성시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문이 지난 17일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어려운 이웃에게 생활비에 보태라고 금전적 도움을 줬다고 치자. 그런데 이웃이 그 돈으로 도박을 하다 적발됐다. 이게 돈 준 사람이 욕을 먹어야 될 일일까?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이 단체의 이사장 출신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얽힌 안성 쉼터 매입 및 매각 의혹이 불거지면서 ‘기부자’인 현대중공업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안성 건물을 시세보다 한참 높은 가격에 매입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고 막대한 손해를 보고 되판 정의연 때문에 기부금을 낸 현대중공업까지 구설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안성 건물의 활용은 물론, 매입·매각 과정에서 기부자가 개입하거나 어떤 의견을 제시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단지 통보만 받았을 뿐이다. 기부 당시에는 정의연이 법적이나 윤리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단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단지 위안부 할머니를 돕겠다는 선의에서 기부했을 뿐인데, 왜 그런 단체를 지원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색깔론부터, 기부금이 헛되이 사용된 데 대한 책임론까지 온갖 화살이 현대중공업을 향한다.


심지어 궁지에 몰린 윤 당선인이 안성 건물 매입 배경에 대해 “현대중공업이 처음에 (마포구) 박물관 옆 건물에 대한 예산 책정을 잘못한 것 같다”고 변명한 탓에 ‘쩨쩨한 대기업’이란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내부 규정상 특정 단체에 지원할 수 있는 지정기부금 최대한도인 10억원을 냈는데도 말이다. 현대중공업은 기부금 최대한도가 더 높았어도 꽉 채워서 기부했을 것이다.


사실 여부를 명확히 밝힐 해명을 내놓기도 곤란하다. 윤 당선인이 곧 여당 국회의원이 될 신분인데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 해명을 내놓았다가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되면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사실 만만한 게 기업 아니던가.


대기업들은 연말 불우이웃돕기부터 각종 재해, 재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씩 쾌척하는 기부의 원천이다. 대기업들의 기부금이 없다면 빈곤층 지원이나 구호 등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로는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내놓는다. 기업 규모에 비해 기부 액수가 적다는 눈총을 피하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놓는 경우도 있어 준조세(準組稅)라는 말도 나오지만, 어쨌건 대기업의 기부가 없다면 각종 사회사업들이 제대로 활성화되겠는가.


하지만 기부의 결과가 경영 차질이나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진다면 기업들의 기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주요 대기업들은 정부 주도 공익사업이란 말만 믿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했다가 줄줄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번 정의연 사태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이 겪은 고초로 인해 ‘기부는 곧 리스크’라는 점이 기업들에게 각인된 만큼 앞으로 특정 단체에 대한 지정기부금은(설령 그 단체의 설립 배경과 목적이 아무리 보편적인 타당성을 지니더라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불확실성이 큰 일은 피하는 게 기업의 생리다. 기부를 안 해서 비난받는 것보다 기부의 결과로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는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되면 굳이 할 이유가 없다.


기업 기부금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탐욕과, 정치적 사안에 기부 기업을 끌어들이려는 이들의 무책임이 우리 사회를 향해 열려 있던 기업의 곳간을 닫히게 만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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