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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이슈 그 후] 대학로에서 사라진 조재현의 흔적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입력 2020.05.20 00:03 수정 2020.05.21 10:08

배우·공연 제작자 명성 신기루처럼 사라져

법적인 책임은 모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조재현. ⓒ 데일리안 조재현. ⓒ 데일리안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조재현은 대중문화계에 큰손이었다.


대중들에겐 정상급 영화배우이자 연극배우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조재현은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의 대표이자, 수현재씨어터와 대명문화공장이 입주해 있는 수현재빌딩의 소유주였다. 시가 350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현재빌딩은 대학로 히트 작품이 쏟아지는 대학로의 한 축이었다. 뮤지컬 '구텐버그',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연극 '미스 프랑스, '리타' 등 수많은 화제작이 이곳을 거쳐 갔다.


하지만 2018년 2월 불거진 '미투' 운동은 조재현의 모든 명예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했다. 수현재컴퍼니는 폐업했고, 수현재씨어터와 대명문화공장은 예스24스테이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조현재의 흔적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더 이상 조재현을 볼 수 없게 됐다. 김기덕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했던 조재현은 2016년 개봉한 '나홀로 휴가'를 끝으로 더이상 영화계와 인연이 없고, '미투' 가해자 신세로 전락하기 직전 출연 중이던 드라마 '크로스'는 그의 필모그래피 마지막 작품이 됐다.


시작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조재현의 실체를 폭로한 배우 최율의 글이었다. 최율은 2018년 2월 2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조재현의 포털 사이트 프로필 캡처 사진을 게재하고 "내가 너 언제 터지나 기다렸지. 생각보다 빨리 올 게 왔군. 이제 겨우 시작. 더 많은 쓰레기들이 남았다. 내가 잃을 게 많아서 많은 말은 못 하지만 변태XX들 다 없어지는 그 날까지 #미투(metoo)"라는 글을 게재했다.


조재현은 발 빠르게 사과하며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선언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 조재현의 구체적인 언행이 계속해서 폭로됐고, 조재현이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쌓아 올린 이미지는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폭로된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충격적이었다.


한 공영방송 여성 스태프는 "(조재현이) 잠깐 들어와 보라"며 자신을 옥상의 한 물탱크실로 유인한 후 억지로 키스했고, 심지어 옷 안으로 손을 넣어 신체 일부를 만지려 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재현이 예쁜 여자 스태프만 보면 성희롱을 했다"거나 "배역을 준다며 성관계를 시도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의 주장이 계속 이어졌다. 한 월간지 기자도 인터뷰 이후 조재현이 성추행을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는 조재현은 특정 매체 기자에게 전화해 "피해자에 대해 알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제보자 색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조재현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재기 가능성까지 완전히 꺾어버린 건 MBC 'PD수첩'이었다. 'PD수첩'은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이 영화 촬영 도중 성폭행에 가담한 의혹을 제기했다.


한 재일교포 여배우는 '연기 지도'를 해준다던 배우 조재현에게 드라마 촬영장 안에 있는 허름한 화장실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쫑파티에 초대받았다는 일반인도 조재현이 화장실로 따라와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손 떨리고, 숨쉬기 힘들지만, 공소시효 안에 있는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범죄자가 처벌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조재현은 아직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18년 6월 조재현의 성폭행을 주장했던 재일교포 여배우 A씨는 조재현 측이 "합의된 관계였다. A씨 어머니가 10년 전 금품을 요구했다"고 반박하며 법적대응에 나서자 숨어버린 경우다.


A씨는 무고죄와 명예훼손으로 조재현을 고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고소를 하지 않았고 조재현 측의 공갈 고소에 대해서도 귀국해 조사를 받지 않았다. 검찰은 오히려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조재현 측의 적극적인 법적 대응에 일반인 피해자들이 끝까지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과거의 고통을 현재로 끌고 와야 하는 데다 2차, 3차 가해는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재현은 법적 책임에서 멀어지지만, 이제 조재현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도 사라져가고 있고, 피해자들은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현재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연예계 활동 재개는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월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조재현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방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근황을 알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재현이 저지른 잘못은 결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만큼 진실을 밝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법적인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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