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자의 눈] 생존 위해 일자리에 기대야 하는 유통가의 아이러니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입력 2020.04.24 07:00 수정 2020.04.24 05:05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 감축 불가피, 정부 고용 유지 압박에 눈치만

글로벌 업체에 안방 뺏길라…경쟁력 저하 우려에 고용 유지도 어려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한 것으로 파악된 부산 한 대형마트에서 보건소 관계자들이 매장에 대한 방역을 하고 있다.ⓒ뉴시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한 것으로 파악된 부산 한 대형마트에서 보건소 관계자들이 매장에 대한 방역을 하고 있다.ⓒ뉴시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돌입한 유통업계가 일자리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프라인 기반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이에 맞춰 폐점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서야 하지만 이로 인해 동반되는 인력 감축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보통 대형마트 한 곳당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300~500명의 근로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백화점은 매장 당 보통 2000~3000명에서 많게는 5000명까지, 복합쇼핑몰도 5000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필요하다. 고용 유발 효과가 크다 보니 매번 정부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유통업계에 손을 벌리곤 한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와 달리 정책 측면에서는 이에 대한 지원은 커녕 규제 일변도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망치는 대상은 대형마트로 고정돼 있다.


온라인 쇼핑 비중이 오프라인과 버금가는 수준까지 확대됐지만 규제는 2010년 대형마트 출점 제한을 시작했던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복합쇼핑몰까지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등 규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모바일 장보기를 실천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이동은 더욱 빨라졌다. 국내 대표 유통업체들이 전체 매장의 30%를 폐점할 정도로 위기감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핵심인 인력 감축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매장을 줄이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것은 당연한 논리지만 입 밖에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수십조원 규모의 산업 지원을 발표하면서도 고용 안정을 전제로 낼 만큼 고용 압박이 거세기 때문이다.


당장 1분기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정부 지원 소식이 반가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고용 안정이라는 전제를 충족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고민으로 다가온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고용을 유지하고 지원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기존 구조조정 계획을 그대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당장의 달콤함을 선택하기에는 장기적으로 경쟁력 저하라는 쓰디 쓴 결과를 감당하기 어렵다. 아마존 같은 글로벌 유통공룡의 한국 진출이 본격화 되면 안방을 내줘야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큰 탓이다. 그렇다고 구조조정 계획을 미루고 고용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유통업계가 생존을 위해 일자리에 기대야 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신규 출점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 확대를 통해 다시 사업을 확대하는 선순환에서, 소비가 줄고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줄이는 악순환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마저도 정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제는 아예 방법이 없다는 반포기 상태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억압과 강요로는 능동적인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10년 간 규제의 결과는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상황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격려와 관심을 보여줄 때다. 본업의 경쟁력 보다 일자리에 기대 생존 여부가 결정돼서는 안 된다.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