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신승훈 “음악과 나의 매개체인 멜로디, 대중엔 위로됐으면”
입력 2020.04.11 20:18
수정 2020.04.13 11:47
30주년 기념 스페셜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 발매
"다양한 음악 소개하는 딜리버리 역할하고 싶어"
1990년 데뷔해 가요사에 유일무이한 흔적을 남긴 싱어송라이터 신승훈이지만 결코 과거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선 하나 그은 것 같다”고 말한다. 과거의 성공에 취해 변하는 음원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여타 스타들과는 분명히 차별된 태도를 보여준다. 그게 바로 신승훈의 음악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있는 이유다.
그는 데뷔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는 14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1991년엔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을 발표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때 SBS ‘인기가요’에서 14주 연속 1위를 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기록도 있다. 이후 가요계 판도가 바뀌면서 발라드 가수들에게 상당한 타격이 있었지만 신승훈은 꾸준히 앨범을 내놓으면서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7연속 밀리언셀러와 1집부터 10집까지 앨범으로 10회 연속 골든디스크를 수상한 유일한 가수로 꼽힌다. 한국 가요음반 역사상 최대의 기록인 총 누적판매량 1700만장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표현하던 ‘국민가수’라는 별명을 스스로 반납할 정도로 지독히 현실적이다.
“‘국민가수’라는 별명은 진작 반납하겠다고 했어요. 한 기자가 자신과 딸, 처제, 아내, 어머니, 할머니가 다 제 노래를 좋아한다면서 ‘이정도면 국민가수가 아니냐’는 골자의 기사를 썼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면서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거죠. 하지만 지금은 어린 친구들은 저를 잘 모르잖아요. 이젠 ‘국민가수’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국민가수’ 별명을 다시 찾기 위함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나가고 싶어요”
지난 8일 발매한 신승훈의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마이 페르소나스’(My Personas)는 그가 나아갈 음악적 방향성의 가교 역할을 하는 앨범이다. 앨범 제목이 그러하듯 신승훈은 이 앨범에 대해 “나의 분신 같은 음악들”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앨범 수록곡 대부분은 이를 대변하듯 가장 신승훈스러운 음악들로 구성됐다.
특히 더블타이틀곡 중 한 곡인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는 앨범 타이틀에 가장 부합한다. 그의 발라드를 5분으로 압축하여 표현됐다. 가히 싱승훈표 발라드 중 백미로 손꼽힐만한 곡이다. 또 다른 타이틀 ‘그러자 우리’는 8분의 6박자의 애절한 발라드 곡이다.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닮은 듯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발라드의 황제’로 불리면서도 신승훈은 누구보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왔던 가수다. 발라드로 대표되는 신승훈에게는 이러한 도전들도 또 다른 자아였다. 수록곡 ‘늦어도 11월에는’은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재즈 넘버다. 그는 이 곡을 “인간 신승훈을 담은 곡”이라고 설명했다. 신승훈과 20년 간 함께 작품을 해왔던 ‘아이 빌리브’(I Believe)의 작사가 양재선이 직접 가사를 썼다.
“인간 신승훈의 모습이 이 노래에 모두 담겨 있어요. 가사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양재선 작사가가 가수 신승훈이 아닌 친한 동생으로서 지켜봐왔던 인간 신승훈에 대한 가사를 쓰고 싶다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노래에요. 12월을 인생에 비유해 제 자화상을 표현한 거죠. 지금의 신승훈은 9월쯤 된 것 같네요”
30년 음악 인생 동안 신승훈은 발라드를 비롯해 알앤비, 하우스, 뉴잭스윙, 디스코, 모던록, 브리티시 록, 월드뮤직, 국악,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후배 가수들의 멘토이자 제작자의 역할을 넘나들었다. 음악 콘텐츠 시장이 크게 변화했음에도 지금까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건 그만큼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유연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래를 듣자’보단 ‘노래나 들을까’라는 식이죠. 바쁜 일상 속에 음악이 하나의 BGM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요. 또 한 가수가 여러 장르를 모두 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장르가 전문화되어 있잖아요. 장르가 특정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본다면 욕심 없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셈이죠. 그 안에서의 변화를 주면서…. 지금의 신승훈도 예전처럼 장르를 넘나들기보단, 변주를 시키고 있는 쪽인 것 같네요”
가요계 대선배로서의 책임을 하는 것도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노력이 엿보인다. ‘워킹 인 더 레인’(Walking in the rain) ‘사랑, 어른이된다는 것’은 각각 모리아(MoRia)와 더필름의 곡으로, 신승훈이 후배들의 숨은 명곡을 리메이크 형식으로 담아냈다. 또 엠넷 ‘더 콜 시즌2’에서 비와이와 협업한 ‘럴러바이’(Lullaby)도 함께 실었다.
“좋은 곡들을 찾기엔 수고가 많이 따르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제가 딜리버리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의 좋은 노래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잊혀지는 게 너무 아쉽잖아요. 숨은 명곡들을 찾아서 세상에 더 알리고 싶은 마음에 리메이크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런 면에선 아주 의미 있는 곡들이죠”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으로 남는 가수가 아니라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삶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지고자 한다. 여기서 신승훈의 음악은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도 이런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평소 위로와 위안을 주는 노래를 많이 만들겠다고 말하던 신승훈은 그 약속에 대한 의지를 곡으로 표현했다.
“이전엔 음악을 ‘밥’ ‘공기’에 비유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음악과 전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음악 때문에 힘들기도, 좋기도 하고, 투정도 많이 부렸죠. 하지만 그런 음악과 나 사이의 매개체인 멜로디가 대중에게 전달돼서 ‘위로’가 되어주는 거죠. 10년 전부터 이런 얘기를 했어요. 사랑노래, 이별노래도 좋지만 지금을 계속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힘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