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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백스테이지] "피에르 퀴리, 그리고 마담 퀴리"

  • [데일리안] 입력 2020.03.23 13:20
  • 수정 2020.03.23 13:21
  •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여성 과학자 아닌 남성 과학자의 부인으로 첫 노벨상을 수상

'마리 퀴리', 과학자의 일대기 아닌 편견과 싸운 여성의 이야기

< 공연에 대한 다양한 뒷얘기를 다룹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제작진과 배우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물론, 특정 장면이 만들어진 과정과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상에 대해 집중 조명합니다. >


뮤지컬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 사진. ⓒ 쇼온컴퍼니

"피에르 퀴리, 그리고 마담 퀴리."


'마리 퀴리'를 연기하는 배우 김소향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단상에 오르지만, 그 짧은 시간의 머뭇거림이 주는 여운은 오랜 시간 객석을 휘감았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과학자 마담 퀴리의 삶을 그린 작품이지만, 화려한 업적 대신 온갖 편견과 차별을 인내해야 했던 한 여성의 고뇌에 주목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 장면은 마담 퀴리의 삶 전체가 응축돼있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당시 사회가 여성 과학자의 공로를 인정하기보다는, 한 위대한 과학자의 아내라는 하나의 틀 안에 가둬버렸다는 것을 함축해 보여준다.


실제로 마리 퀴리가 첫 번째 노벨상을 수상한 1903년, 그녀는 노벨물리학상 후보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만들어낸 성과는 온전히 남편의 것이었다.


당시 스웨덴 노벨상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던 한 수학자가 이 사실을 피에르에게 알렸고, 피에르는 "마리 퀴리가 빠진 노벨상은 가짜에 불과하다"며 줄기차게 탄원한 끝에 마리 퀴리는 공동 수상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이후에도 '남편을 잘 만나 노벨상을 받은 여자'라는 비아냥을 받아야 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약 3분 남짓의 짧은 장면에 그대로 녹여냈다.


마담 퀴리를 연기한 김소향은 이 짧은 시간에 세상의 편견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 슬픔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 스스로 증명해내겠다는 강한 의지까지 오롯이 표현해냈다.


김소향은 이 장면에 대해 "'마담 퀴리'라고 불리는 순간의 감정은 백만 가지였을 것 같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자신을 다잡고 '내가 지금 실망할 때가 아니야. 너희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줄게'라고 다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해당 장면을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마리 퀴리는 초인적인 인내심, 내면의 강인함이었다. 겉으로 분노해 폭발하기보다는 그것을 억누른다. 대신 그 모든 에너지는 오로지 연구에 쏟아붓는다. 영양실조로 몇 번씩 쓰러지고 방사능 후유증과 교통사고로 남편을 먼저 떠났지만, 그 어떤 것도 마리 퀴리의 연구에 대한 집념을 꺾지 못했다.


결국 마리 퀴리는 1911년 방사성 물질인 라듐의 성질 규명과 그 화합물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단순히 한 위대한 과학자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그 시대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편견과 차별에 당당하게 맞서 싸워온 한 여성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그 이야기는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의 힘이 뮤지컬 '마리 퀴리'가 어려운 시국 속에서도 사랑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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