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산정 방식 바꾼 네이버, 취지 좋지만 ‘사재기’ 근절은 글쎄
입력 2020.03.21 00:04
수정 2020.03.21 00:07
네이버 바이브, 비례배분제→인별 정산 도입
플로, 실시간 음원 차트 폐지
“내 돈은 내가 듣는 음악에 갔으면 좋겠어!”
어찌 보면 당연해야 할 이 말이 네이버 바이브(VIBE)의 변화를 알리는 슬로건이 됐다. 네이버 바이브는 십 수 년을 이어오던 기존의 음원 산정 방식을 뒤엎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업계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경쟁 음원 스트리밍 업체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잔뜩 날을 세우고 있다.
기존 국내 스트리밍 업체들(멜론, 지니뮤직 등)은 소비자들이 낸 음원 이용료를 모아 재생 횟수 비중에 따라 수익을 가수와 작곡가, 음원 제작사 등 저작권자에게 나누어 주는 ‘비례 배분제’를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한 음원 사이트에서 지난달 이용자들의 총 재생 횟수가 1만 번이고, 가수 A의 음원이 1000번 재생이 되었다면 해당 저작권자에게는 전체 이용 요금의 10%가 돌아간다.
단순히 활자로 봤을 때 공정할 것 같은 비례 배분제에는 큰 맹점이 존재한다. 차트 상위를 독점하는 일부 인기 음원이 있다면 수익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상 현 국내 가요계의 차트 독점 상황에서 비례 배분제는 상대적으로 팬층이 적은 인디 밴드에게 손해가 가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이용자는 정액제를 이용하기 때문에 업체의 수익은 고정되어 있는데, 인기 아이돌이 새 음원을 출시하면 폭발적으로 음원 재생 횟수가 늘어나고, 인디밴드의 노래 재생 비중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결국 인디 밴드의 수익이 감소한다.
네이버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정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상반기 도입 예정이라는 ‘인별 정산’은 한 곡이 재생될 때마다 이용자가 지불한 금액을 일일이 계산해 해당 저작권자에게 지급한다는 것이다. 다만 저작권 정산 방식이 기존보다 매우 복잡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현행 방식에서는 차트 상위권에 오른 음원에 계속 트래픽이 몰리는 국내 업계 특성 때문에 승자 독식, 음원 사재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기 쉽다. 공정하게 소비자가 들은 만큼 나눠주는 게 모든 음악계에 이로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꾸준히 음원 사재기 현상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업계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네이버의 이런 작은 변화들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레이블산업협회 윤동환 부회장은 “좋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동안 내부적인 시스템을 모르고 단적으로 ‘폐지’를 이야기했지만 플랫폼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연구, 개선할 점을 찾아 방법을 만들어가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고 평했다.
네이버의 공정한 음원 이용료 산정 방식 변화의 취지는 좋지만, 가요계 전반에 드리운 ‘사재기’를 근절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볼 순 없다는 의견이다. 윤 부회장은 “사재기와 음원 정산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사실상 ‘공정하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 기존 방식과 비교했을 때 인디 밴드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의 차이는 크지 않다. 사재기의 목표는 음원 수익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음원 순위를 높이면서 오는 부가적인 혜택들을 누리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변화가 사재기 근절의 방법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재기 근절을 위해서는 음원사이트 플로의 변화를 주목할 만하다. 최근 플로는 여러 고질적인 문제의 발단이 된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는 선택을 했다. 플랫폼 자체적으로 문제점에 대한 대안과 방법을 찾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윤 부회장은 다만 “아직까지 어떤 효과를 거둘지는 모르겠다. 24시간 누적을 기반으로 한 시간 단위로 바뀌는 차트이기에 기존 실시간 차트와 얼마나 다르고 효과가 있는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다. 그리고 플로에서는 비정상적인 청취 패턴을 감지했다는데 향후 다른 플랫폼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이라면서 “지금의 차트를 조작하는 세력들이 또 플로의 시스템에 맞춘 조작 방법을 내놓을까봐 걱정”이라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까지는 네이버 바이브와 플로가 각자 플랫폼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문제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