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프리 아닌 캐릭터 프리"…독특한 2인극 '데미안'
입력 2020.03.11 17:04
수정 2020.03.11 17:05
남녀·배우 구분 없는 싱클레어·데미안 역
"한 자아에는 남성성·여성성 모두 있다"
"젠더 프리라는 개념보다는 한 배우가 모든 캐릭터를 연기하는 '캐릭터 프리'라고 봐 주시면 좋겠다."
독특한 창작 뮤지컬 '데미안'이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데미안'은 고정된 배역이 없는 독특한 2인극으로 남녀 배우가 한 명씩 싱클레어 또는 '데미안'을 맡는다. 정인지, 유승현, 전성민, 김바다, 김현진, 김주연이 때에 따라 싱클레어 또는 데미안이 돼 무대에 오른다.
등장인물은 크게 싱클레어와 데미안으로 나뉘는 2인극이지만 데미안이 소설 속 다른 인물이 되기도 한다. 크로머, 싱클레어의 아버지,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 등의 여러 인물이 어떻게 표현될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싱클레어는 데미안,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찾아간다.
이대웅 연출은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존재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이야기 그린 작품"이라며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이야기다. 한 자아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있다고 한다. 배역 구분은 무의미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이대웅 연출은 헤르만 헤세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융을 만난 뒤 '데미안'을 썼다는 점을 언급하며 "헤세가 융과의 만남을 통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작품 자체도 어렵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들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정인지는 "'정말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났을까. 데미안을 만나고 싶어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작품에 접근했다"고 말했다.
정인지는 "데미안이 싱클리어, 싱클레어가 데미안이기도 하고, 그런 두 인물의 성장 과정이기 때문에 역할을 바꿔 연기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어 간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마이 버킷 리스트', '쓰릴 미'에 이어 세 번째 2인극에 도전하는 김현진은 "싱클레어를 연기할 땐 성장의 고통, 성장 이후 변화들에 집중했다면 데미안을 연기할 땐 싱클레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민하면서 만들어갔던 거 같다"고 연기의 주안점을 밝혔다.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연극 '보도지침' 등의 극작을 맡았던 오세혁이 극을 쓰고 뮤지컬 '광염 소나타', '리틀잭', '난설' 등의 음악을 맡은 다미로가 곡을 붙였다.
오세혁 작가는 "소설을 계속 읽고 있으면 한편의 긴 시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 나오는 문장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며 "작가로서 집중해서 헤르만 헤세의 문장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집중했다. 특히 이대웅 연출은 대본에서 나오는 이미지, 미감을 잘 표현해준다"고 말했다.
오 작가는 또 "신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지만 거대한 집단이 바라는 의도대로 만들어진 얼굴이 있는 거 같다"며 "배우와 관객들이 일상을 살아가며 한 번 정도는 자기가 바라는 표정을 지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자기의 진짜 얼굴이 무엇일까 찾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개막한 '데미안'은 다음달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공연계를 강타한 가운데 올리는 공연이라 고민과 걱정이 많다.
김현진은 "이 상황이 가벼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연습할 때 마스크를 쓰고 한 적도 있었다. 관객들의 건강을 위해 열화상 카메라를 준비하고 극장 소독도 열심히 하고 있다. 관객들도 마스크를 쓰고 찾아주는 만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