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경제 성장 2%를 선방이라 부르게 된 시대
입력 2019.12.13 07:00
수정 2019.12.13 07:24
"낙관론 여전" 시장 신뢰 잃어버린 한은 전망 '의문부호'
국민소득 줄어든 소득주도성장…더 이상의 표류 안 된다
"낙관론 여전" 시장 신뢰 잃어버린 한은 전망 '의문부호'
국민소득 줄어든 소득주도성장…더 이상의 표류 안 된다
한국은행의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둘러싼 최대 관전 포인트는 경제 성장률 전망치 발표였다. 기준금리는 한 달여 전 인하가 단행된 만큼 숨고르기 돌입이 기정사실로 여겨진 반면, 올해 경제 성장률은 2% 붕괴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탓이다. 정부가 연일 2%대 사수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한은이 세간의 우려대로 1%대 성장 시대를 공식화했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한은은 중간을 택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딱 2% 성장할 것이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예측이 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도리어 한은이 지나친 낙관론에 휩싸여 있다는 비판만 더 거세졌다. 앞서 민간 연구기관들이 줄줄이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내려 잡은 까닭에 누구 말이 맞을지를 두고 혼란만 커진 꼴이 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쪽은 오히려 정부였다. 줄곧 2%대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란 입장을 드러내온 정부로서는 최악을 면한 셈이다. 청와대는 글로벌 경기가 꺾이고 있는 와중 2%대 성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선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와 5000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이른바 3050클럽 국가들 중에서 이 정도 성장률은 나쁘지 않은 수치란 자평이다.
하지만 이런 방어 논리를 되풀이해야 하는 현실은 그 만큼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 불안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은이 말한 2%대 경제 성장률은 우리나라가 외부의 큰 충격 없이 맞이하는 최악의 수치다. 농업이 생산의 중심이었던 가운데 심각한 흉년이 찾아온 1956년(0.7%)과 2차 오일쇼크 시절인 1980년(-1.7%), 외환위기가 몰아닥친 1998(-5.5%),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던 2009년(0.7%)을 제외하고는 최저치다.
아울러 3050클럽 국가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시선에도 비판이 제기된다.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의 공적 부조를 완비해 저성장에 대비해 온 선진국들과 아직 수출이 경제를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반박이다.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큰 경제를 이룬 뒤 연착륙하고 있 곳들과 비행 중에 흔들리고 있는 우리를 같은 선에 놓을 순 없다는 얘기다.
이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에도 제동이 걸렸다. 청사진의 기본 틀인 할 국민소득이 역성장으로 돌아서게 되면서다.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000달러 안팎에 머물 것으로 추산됐다. 한은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은 유지하겠지만 3만4000달러였던 지난해보다는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소득이 감소한 것은 2015년 이후 4년 만이자, 이번 정부 들어선 처음이다.
소득주도성장 논의의 기반인 소득 자체가 줄어들면서 그 위에 쌓아 온 전략들도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소득주도성장의 요체는 크게 두 갈래였다. 우선 서민들의 지갑을 두껍게 해 내수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고, 늘어난 소득이 부동산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게 만들어 생산적 활동에 쓰일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과 집값 안정을 부르짖은 이유였다. 그러나 모두가 목도하듯 이 같은 목표들은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가치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비난은 아니다. 한 사회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도전은 언제든 주저하지 말고 추진해야 할 정부의 책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 방향에 수정이 필요할 때 과감히 문제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 또한 지도자에게 필요한 용기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맥스웰은 '목표를 설정할 때보다 목표를 실현할 때 감동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30년 넘도록 기업은 물론 정부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던져 왔던 그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 정부가 곱씹어봐야 할 격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