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단식, 홍곡의 큰 뜻을 연작이 어찌 알까
입력 2019.11.26 05:00
수정 2019.11.26 06:04
단식 일주일째, 유의미한 사회적 반향 일으켜
"시간 지날수록 국민 속으로 다가가는 느낌"
잇단 '승부수' 어떤 평가 올바를지 지켜봐야
단식 일주일째, 유의미한 사회적 반향 일으켜
"시간 지날수록 국민 속으로 다가가는 느낌"
잇단 '승부수' 어떤 평가 올바를지 지켜봐야
"정치 문법에 어긋난다"며 의구심을 낳았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승부수'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황교안 대표의 청와대앞 풍찬노숙 단식이 일주일째에 다다르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내가 황교안이다' 실시간검색 운동까지 벌어지는 등 큰 반향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도 페이스북에 "고통마저도 소중하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라고 자부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정치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황 대표의 '승부수'가 세 번째 먹혀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황 대표가 지난 5월 범여권의 공수처·선거제 패스트트랙 폭거 직후 광화문광장에서 매주마다 장외집회를 시도할 때, 당 안팎에서는 우려가 많았다. 보수 진영은 이러한 '광장에서의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는 염려였다.
계속되는 '동원집회'에 각 당원협의회의 당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하소연에서부터 당의 재정이 바닥나고 있다는 보고까지 온갖 반발이 이어졌다. 그러자 황 대표는 지방 당원들의 불편은 권역별 집회로 달래고, 재정 문제는 중앙당후원회와 재정위원회를 재구성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이 사이 집권 세력은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조국 사태'로 분노한 민심은 지난 10월 3일 개천절에 광장에서 한국당 장외집회와 하나의 흐름이 되면서 사태의 분수령을 이뤘다.
이에 앞서 황 대표는 9월 추석 연휴 직후 삭발을 단행하기도 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는 사상 초유의 삭발 투쟁이었다.
조 전 장관 임명에 항의하는 의미에서의 삭발은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제일 먼저 단행했다. '무소속 의원이 먼저 치고나가는데, 왜 한국당은 가만히 있느냐'라는 불만 여론이 일자, 추석 직전 박인숙 의원이 한국당 의원 중에서는 최초로 삭발을 했으나, 국민의 시선은 추석 연휴 이후 한국당이 어떤 '투쟁 카드'를 내놓느냐에 쏠렸다.
추석 직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황 대표가 전격적으로 삭발을 단행하지 않았더라면, 한국당이 투쟁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도 황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지 이틀만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종료 전격 연기가 이뤄졌다. 미국에서 귀국한 나경원 원내대표는 "황 대표의 단식이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고비 때마다 기존의 '정치 문법'과 맥락을 무시한 상황에서 던져졌지만 뜻밖의 좋은 결과를 불러오고 있는 황 대표의 '승부수'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홍곡(鴻鵠)의 큰 뜻'이라는 분석과 '운장(運將)'이라는 상반되는 평가가 병존한다.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한국당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황교안 대표는 남들의 의견을 끝까지 듣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적이 별로 없다"며 "만나야할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여러 의견을 들은 뒤에, 생각하지 못했던 승부수를 던진다"고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정치를 해오며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도 있는 이 의원은 황 대표를 가리켜 "그 어느 정치지도자보다 무서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황 대표의 '승부수'는 연작(燕雀)들이 알지 못하는 '홍곡의 큰 뜻'이 되는 셈이다.
반대로 승부수가 연신 우연히 맞아떨어질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22일 정부가 지소미아의 전격 연장 결정을 내렸을 때도, 황 대표를 가리켜 "운장"이라는 얘기가 당내 일각에서 나왔다.
어떤 평가가 올바를지는 본회의 부의·상정이 다가오고 있는 선거법 패스트트랙 향배에 달려있다는 관측이다.
황 대표는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개악 시도 단념이라는 '3대 민주회복' 요구를 내걸고 단식을 시작했다. 이 중의 핵심은 선거제 개악 저지라고 할 수 있다. 황 대표 본인도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사실 단식은 선거제 때문에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 핵심관계자는 "황 대표가 단식을 하는 바람에 나경원 원내대표가 협상을 해볼 여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시각도 있다"며 "패스트트랙이 강행 통과돼 버렸을 때 '황교안은 뭘했느냐'는 비난을 비껴나가기 위한 '면피 단식'이 돼서는, 개인적 차원의 '승부수'라고 할 수는 있어도, 당과 나라를 위한 '승부수'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