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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을러대는 청와대 참모들

데스크 기자
입력 2019.11.04 09:00 수정 2019.11.04 12:56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풍자로 간언하는 방법도 있다

대명천지에 못할 말 뭐가 있나…김정은까지 감싸주는 까닭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풍자로 간언하는 방법도 있다
대명천지에 못할 말 뭐가 있나…김정은까지 감싸주는 까닭은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강기정 정무수석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강기정 정무수석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초나라에 우맹이라는 음악가가 있었다. 키가 8척이고 구변이 좋아 언제나 웃으며 이야기하는 가운데 풍자로 간언을 했다. 초장왕 때이니까 기원전 7~6세기에 걸친 시대다. 왕에게 애마 한 필이 있었는데, 너무 귀하게 기른 바람에 비만증으로 죽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게 하고 대부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고자 했다. 신하들이 다투어 잘못을 지적하자 왕은 “앞으로 이 문제로 간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명을 내렸다.

우맹이 이 말을 듣고 궁궐에 들어가 통곡을 했다. 왕이 까닭을 물었다. 우맹이 이렇게 대답했다.

풍자로 간언하는 방법도 있다

“말은 왕께서 아끼시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의 예로 장례를 지내다니요. 너무 박정합니다. 원컨대 국왕의 예로써 장사지내십시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왕이 물었다.

“옥을 다듬어 관을 짜고 무늬 있는 가래나무로 바깥 널을 만들고, 느릅나무‧단풍나무‧녹나무로 횡대(관을 묻은 뒤에 구덩이 위에 덮는 널조각)를 만드십시오. 병사들을 동원하여 무덤을 파게하고, 노약자들에게 흙을 져 나르게 하며, 제나라와 조나라의 사신을 앞쪽에 열을 지어 서게 하고, 한나라와 위나라 사신을 그 뒤에서 호위하게 하십시오. 사당을 세워 태뢰(나라의 제사에 소•양•돼지를 아울러 바치는 것)로 제사지내고, 만호의 읍으로써 받들게 하십시오. 제후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모두들 대왕께서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왕이 놀라서 말했다.

“내가 이토록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이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맹이 말했다.

“대왕을 위해 육축(소‧말‧돼지‧양‧ 닭‧개)으로서 장사지내십시오. 부뚜막을 바깥 널로 삼고 구리로 만든 솥을 속 널로 삼아 생강과 대추를 섞은 다음 목란(목련과의 활엽 교목)을 때어 볏짚으로 제사 지내고 타오르는 불빛으로 옷을 입혀 이것을 사람의 창자 속에 장사 지내는 것입니다.”

왕은 말을 태관(왕의 음식을 책임진 요리사)에게 넘겨 세상 사람들 모르게 처리하도록 했다.(사마천, 골계열전, 김원중 역)

‘조국 사태’로 온 나라가 들썩거려도 청와대‧내각‧여당에서 대통령에게 직간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에도 그가 잘못해서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여기는 빛이 아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충직하고 똑똑한 특급참모를 잃어 안타까워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대명천지에 못할 말 뭐가 있나

이 대명천지 민주국가에서 참모‧각료‧여당의원들이 대통령에게 못할 말이 뭐가 있다는 것인가. 대통령이 민심에 어긋나는 처사를 하거나 그런 정책을 고집하면 거리낌 없이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소통하는 민주정부 아니겠는가. 그런데 끝까지 조 전 장관을 감쌌을 뿐만 아니라 그가 어쩔 수 없이 사퇴하고 난 후에도 앙앙불락하는 표정들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여당 쪽에서 소장파 의원 몇몇이 소신 발언을 했고, 두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까지 했지만 정권 내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그냥 어물쩍 넘어갈 분위기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인사’에 대한 유감을 표하기가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걸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에게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말까지는 했다. 그러나 40분간의 간담회에서 한번도 ‘조국’은 거명하지 않았다. 당 대표까지도 여전히 구체적인 이유를 들면서 정색을 하고 ‘사과’할 용기는 없는 모양이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1일 국회운영위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조 전 장관을 사퇴시킨 게 억울하냐”고 물은데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답하긴 했다. 나 대표가 “인사가 잘못된 것이 맞느냐”고 재차 물었다. 노 실장은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다. 결코 흔쾌히 시인하기는 싫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지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려 한 말인지는 노 실장 자신만이 알 일이다.

나 대표가 “대통령 닮아 가느냐”고 하는 말에 그는 “대통령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대통령에게는 무한 충성을’이라는 모토라도 가진 느낌을 준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청와대 동료들에 대해서도 ‘보호본능’을 발휘한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할라치면 단호히 막아 나서거나 심하게는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를 보인다.

김정은까지 감싸주는 까닭은

정부의 김정은 감싸기는 정평이 나 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북한은 9‧19남북군사합의를 지키고 있다고 대신 우겨준다. 저들이 직접 대통령을 겨냥해서까지 심하게 조롱하고 모욕을 가하는데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법이 없다. 그게 다 대화 혹은 협상의 의지를 표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북한 김정은 집단의 오만불손한 태도, 공공연한 협박공갈에 대해 누가 심하게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대화분위기를 깨트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서슴없이 낸다.

국감에서 한국당 나 원내대표가 최근 북한의 방사포 시험발사와 관련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따졌다. “(북한이) 신종 미사일에다가 핵을 탑재하면 이것이 전부 다 핵무기가 되는데 문재인 정권 들어서 지금 우리 안보가 더 튼튼해졌다고 보는 것이냐.” 정 실장이 말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국방개혁 20을 통해 우리 방위력을 현격히 개선했다.” 나 대표는 “안보실장이 이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이 불안해 한다”머 “억지를 부리지 말라. 전문가가 막을 수 없다고 그런다. 우기지 말라”고 반박했다.

국민이 안보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국가안보의 최고사령탑이라면 민심동향은 인정해야 한다. 그 점에 이해를 표하면서 국민을 다독거리든 안심시키든 해야 하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도리다. 그런데 정 실장이 아니라 강기정 정무수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우기는 게 뭐요, 우기다가 뭐냐고”라며 손에 쥔 노란색 책자를 내흔들기까지 했다. 이런 행동을 ‘을러대기’라고 한다. 노 실장도 강 수석의 분개에 동참(?)하는 바람에 한참 감사가 중지되기도 했다.

도대체 청와대의 대통령 참모들이 야당에 대해 이처럼 기고만장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어떻게 대통령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직언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야당에 대해서는 호통까지 치고 나설 수 있다는 것인지 상식만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과 청와대라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보기에 처량하고 딱할 때가 없지 않다.

정색을 하고 대통령에게 직간을 하기 어려우면 우맹과 같은 기지라도 발휘할 일이다. 그게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을 위하고, 정부를 위하고, 정권을 위하는 길일 텐데, 아직은 요지부동이니 어쩌겠는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시라고 말할밖에.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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