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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82년생 김지영' 감독 "두려워도 용기 있게"

부수정 기자
입력 2019.10.31 08:33
수정 2019.11.05 08:49

첫 장편…개봉 5일 만에 100만 돌파

"원작 메시지 훼손하지 않으려 고민"

첫 장편…개봉 5일 만에 100만 돌파
"원작 메시지 훼손하지 않으려 고민"


김도영 감독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첫 장편 연출에 도전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아무도 꺼내지 않았던 얘기를 한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논란의 중심에 선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용기 있게 스크린에 옮긴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49)은 원작을 이렇게 평가했다.

23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딸이고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 때문이었다. 소설은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을 세밀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얻어 출간 2년여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공감을 얻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페미니즘 논란'을 일으키며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왔다.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청와대 국민청원엔 '영화화를 반대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주연으로 나선 배우 정유미의 SNS에는 악플이 쏟아졌다.

여러 논란을 딛고 세상에 나온 영화는 소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며 김지영의 삶을 비춘다. 소설은 다소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흐른 반면, 영화는 따뜻한 결로 등장인물 모두를 어루만진다.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김도영 감독을 만났다.

개봉 후 쏟아진 언론 인터뷰에 바쁜 나날을 보낸 김 감독에게 100만 돌파는 선물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정말 좋다"며 웃은 그는 "장편 영화 연출은 처음이라 흥행 스코어에 대해 잘 몰랐다"며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둘지 몰랐다"고 전했다.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을 세밀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이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성차별, 고용시장에서 받는 불평등, '독박 육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사회구조적 모순과 연결해 보여준다.

개봉 전에 평점 테러를 받기도 했지만 개봉 후에는 입소문을 타고 논란이 잦아드는 편이다.

김 감독은 "주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하고 잘 봤다고 얘기해주셨다"며 "워낙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은 작품이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오히려 개봉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밝혔다.

김도영 감독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첫 장편 연출에 도전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했다. 소설에 대한 평가가 갈리기 때문이다. 영화화 제안을 받기 전에 소설을 읽은 그는 지영이를 통해 자신과 엄마의 삶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단다. "제가 70년생인데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가 익숙하게 느껴져서 슬펐어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과 편견이 바뀌지 않은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김 감독은 연극무대에서 배우로 오래 활동하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연출에 도전했다. 2018년 단편 영화 '자유연기'를 연출했고 '82년생 김지영'으로 마침내 장편 데뷔를 했다.

'자유연기'는 육아로 정신없는 배우 지연(강말금)이 유명 감독에게 오디션 제의를 받으며 벌어진 일을 그렸다.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하게 워킹맘을 그린다.

이 영화를 본 관계자를 통해 '82년생 김지영'의 연출 제의를 받았다. 워낙에 화제가 된 작품인 터라 고민이 됐다. 인기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작이 우리가 쉽게 꺼내기 쉽지 않은 남녀 성차별 문제를 건드린 터라 부담감이 밀려왔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 화두를 꺼낸 원작의 결을 지켜낼 수 있을까', '내 역량이 그만큼 되나'라는 고민이 이어졌다. 영화가 나온 이 시점에도 고민은 계속된다. "영화적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리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작품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게 나올 수밖에 없죠. 특히 이 영화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반응이 각양각색이더라고요."

'82년생 김지영'을 비난하는 쪽에서는 오히려 요즘 시대에서는 남성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남녀 차별에 대한 공론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짚었다.

'82년생 김지영'이 호평을 얻는 이유는 '각색'에 있다. 메시지는 훼손하지 않으면서 원작의 지닌 단점을 따뜻하게 메웠다.

초고 시나리오가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한 김 감독은 잃어버린 지영이가 말을 찾는 과정에 집중했다. 사실 지영이는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 사랑스러운 딸, 다정한 남편이 그의 곁에 있기 때문이다. '꽤 괜찮을 삶을 사는 지영이가 왜 말을 잃었을까'에서부터 시작했다. 소설은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끝나지만, 영화는 결말을 바꿔 희망을 길어 올린다.

영화엔 지영이가 메마른 얼굴로 베란다에 서서 창밖을 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지영이의 고민과 마음을 드러낸 장면이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김 감독의 경험이 녹아 있다. "육아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내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시간이 없어진다는 게 꽤 충격적이었죠. 종일 육아를 하다 베란다에 서는 순간 자기 시간을 가지는데 여러 생각이 듭니다. 지영이에겐 베란다가 지영이의 공간인 거죠. 정신없이 사는데 해가 지면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도 느끼고요."

이런 기분은 육아맘들만 느끼는 게 아니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문득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김 감독은 정유미를 통해 이를 보여줬다. "정유미 씨가 정말 잘해줬어요. 깨끗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은 연기였죠."

원작에서 지영이가 겪은 에피소드 중 어떤 걸 선택할지도 고민했다. 지영이의 삶의 시기마다 어울릴 만한 에피소드를 찾고, 결말을 향해 달려갔다. 김 감독이 좋아했던 원작 속 실내화 신은 촬영했지만 지영이의 서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 과감하게 편집했다. 대신 지영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자기 할 말을 못 했던 지영이는 자신에게 '맘충'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유려하진 않지만 심지가 곧은 말이었다. 원작엔 없는 에피소드였다. "현실적인 장면이죠. 영웅의 탄생처럼 멋있는 장면은 아니에요. 지영이가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고 씩씩해졌으면 했어요. 여성들이 조금 더 용감해지고, 자기 할 말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사와 상담하던 지영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해 '나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이 엔딩을 좋아한다는 김 감독은 "지영의 말이 이 영화를 대변한다"며 "이런 영화를 만든 것 자체가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자기 목표와 욕망을 위해 김지영처럼 할 말을 했으면 하고, 그런 여성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도영 감독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첫 장편 연출에 도전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김지영의 남편인 대현은 소설보다 훨씬 따뜻하고 다정하게 나온다. 대현 역의 공유를 두고선 누리꾼들은 "남편이 공유인데 김지영이 왜 힘들까"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소설에선 남편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에선 남편이 김지영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병원에 보내기까지 과정이 3분의 1이나 나온다. 남편이 역할이 중요한 셈이다.

김 감독은 "다정하고 따뜻한 남편을 둔 지영이의 삶이 좋아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짚고 싶었다"며 "주변 캐릭터가 악인이라서 지영이가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단지 남편이 착해서, 좋은 가족이 있다고 해서 지영이의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보통 사람인 지영이도 아프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죠. 사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가혹하거든요. 공기처럼 스친 차별을 짚고 싶었습니다."

공유에 대해선 "'도깨비'의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벗고 평범한 남편 역을 잘 표현하려고 애썼다"며 "배우로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설이 '여자 김지영'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김지영이라는 딸과 오미숙이라는 엄마에 더 집중한다. 결국, 딸과 엄마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내 삶을 지나 어느덧 엄마의 삶에 도착한다. 우리네 엄마는 얼마나 더 큰 차별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 차별을 묵묵히 견뎌냈는지 고민하게 된다. "저도 엄마를 떠올렸죠. 엄마는 이름 없이 그냥 '엄마'라고 불려요. 미숙의 삶을 통해 엄마의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고모, 이모 등 주변 사람들도 생각나죠."

최근엔 '벌새'(감독 김보라) '메기(이옥섭 감독), 그리고 '82년생 김지영'까지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단순한 역할로 소비되어온 여성 캐릭터의 역할도 다양해졌다.

김 감독은 "좋은 현상"이라며 "여성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영화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면서 "배우로 활동할 때보다 연출이 더 편하다. 연출은 연기보다 훨씬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사회적 화두를 대범하게 꺼낸 것만으로도 김 감독의 행보는 가치 있다. 그런 그가 바라보고 꿈꾸는 사회가 궁금해졌다. "여성이 차별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씩 좋아질 거라 믿어요."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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