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자들더러 국정의 동반자가 되라니?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9.10.28 09:00 수정 2019.10.28 08:16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언론자유 보장 자랑하는 대통령

보도 진실성 여부 누가 판단하나…정권 측 인사들의 위험한 언론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언론자유 보장 자랑하는 대통령
보도 진실성 여부 누가 판단하나…정권 측 인사들의 위험한 언론관


ⓒ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홈페이지

“오늘 이 자리는 그동안 우리 기자님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게 마련된 자리라고 여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 출입기자 240여명과 녹지원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기자들이 대통령 얼굴을 보고자 하는 것은 얼굴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대통령에게서 직접 국정 현안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방침을 들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못했으니 ‘보상’으로 간담회를 마련했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이야말로 동문서답이다.

“언론은 ‘제4부’라고 합니다. 입법 행정 사법 3부 더하기 언론 4부, 이렇게 함께 국가를 움직여 갑니다.”

언론자유 보장 자랑하는 대통령

전혀 새롭지도 않은 이 말을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한 까닭이야 뻔하다. 언론을 중시한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권력자 측의 이런 말은 일종의 주문일 경우가 많다. 그렇게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가졌으니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뜻일 터이다.

그는 과거 독재시대에는 권력의 통제로 언론의 자유가 억압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상투적 화법이다.

“다행스럽게 지금은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것을 가로막는 그런 어떤 권력의 작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제 마음껏 진실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오로지 과연 이것이 진실인가, 또 우리가 진실을 규명 있게(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표현돼 있다) 이렇게 알리고 있는가라는 어떤 스스로의 성찰이나 노력, 이런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처럼 태연하게 진실이 아닌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재주인가 아니면 대통령식 화법인가?

정부 출범 후 8‧9개각 이전까지 몇몇 인터넷 매체와 보수 유튜버를 제외한 거의 전 언론이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여당 그리고 정치성 진보좌파 세력에 대해 무한 찬사와 지지를 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비판성 기사를 싣는 매체도 있긴 했지만 기조 자체엔 변화가 없었다). 문 대통령은 그런 보도 태도와 내용이 오직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일까?

박근혜 정권이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언론계, 특히 방송계에서는 보수패널 퇴출 압박이 가중됐다. 문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엔 그게 현실화 본격화했다. 정부 관계기관이 직접 압박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론에 대해 가해지는 압력의 메커니즘까지 모른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밀려난 인사들 가운데 여럿이 유튜버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시사 유튜브 방송’ 영역이 엄청나게 넓어진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당연히 문 대통령도 알고 있을 일이다.

보도 진실성 여부 누가 판단하나

그런데 이제 언론은 진실을 마음껏 알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만 보도내용이 진실인가, 진실 여부를 확인하고 보도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그렇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란다. 정치적인 판단의 여지가 있는 사안의 진실성 여부는 누가 판단하고 누가 규정하는가. 진실보도를 요구하려면 정부 스스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 그게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진실보도를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압박 혹은 위협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서 말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이 진실을 알리는 노력을 통해서 지금 국정의 동반자가 되어 주신 우리 춘추관 기자님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그는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언론은 국정의 동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언론은 국정 과정에 대한 감시자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 언론의 존재 의의가 거기에 있다.

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당부는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출범할 때 천명했듯이 우리가 좀 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그 역사적인 그런 과업에 있어서도 우리 언론인 여러분들, 또 기자님들이 끝까지 동반자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정부가 그 공약을 성심껏 수행하고 있는가,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주시하고 관찰해서 평가하는 게 언론의 본분이다. 왜 기자들이 정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가. 모든 기자들이 북한식 표현으로 ‘보도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 측 인사들의 위험한 언론관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문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은 언론의 이른바 ‘촛불혁명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너무 믿어서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깨달은 인상이다. 그래서 기자들에게도 관심을 좀 보이자 해서 녹지원 간담회를 마련한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2백 수십 명씩이나 모아놓고 간담회라는 게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사실 간담회든 회견이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에 대한 질문이 허용되면 대통령이 난처한 지경에 놓일 수도 있을 테니까 의도적으로 그런 형식을 취한 게 아니겠는가).

의도적이든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든 기자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인 것은 나쁘다할 수 없다. 다만 언론에 대한 인식은 바로 해야 한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권 안팎의 진보좌파 유력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그 대표적인 인사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징벌적 배상제도를 거론하면서 “미국에 있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언론이) 왜곡해서 (기사를) 쓰면 완전히 패가망신 당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징벌적 배상제도는 법적인 판단이 전제되는 것이니까 여기서 따질 일은 아니다. 그런데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은 듣기에 참으로 고약하다. 누가 자격 유무를 판단하는가. 어느 선까지가 그 ‘자격’이라는 것의 조건 혹은 커트라인인가. 박 시장 자신도 판정권자라는 뜻인가.

정권 실세‧유력자라는 사람들의 언론관이 바뀌지 않는 한 언론은 양자택일의 요구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굴종하느냐 저항하느냐’, ‘(권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이 되느냐, 그런 언론이 되길 포기하느냐’의 기로에 서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언론환경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