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산층'이 움직였다
입력 2019.10.04 02:00
수정 2019.10.04 06:09
"87항쟁 이 자리 있었다"는 前넥타이부대부터
"나도 박근혜 탄핵때 촛불들었다"는 20대까지
"87항쟁 이 자리 있었다"는 前넥타이부대부터
"나도 박근혜 탄핵때 촛불들었다"는 20대까지
조국 법무장관 관련 의혹들과 임명 강행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며,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산층과 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3일 서울 도심은 가족 단위 삼삼오오 몰려나온 집회 인원들로 거대한 인파를 이뤘다. 남북으로는 광화문에서 시청앞과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2.5㎞ 구간, 동서로는 새문안교회에서 종각까지 1㎞ 구간, 세종대로사거리의 가로세로가 전부 집회 인파로 뒤덮였다.
도심으로 진입하는 버스 노선은 영천시장·백병원 등에서 모두 회차했고, 지하철은 승강장이 사람으로 꽉 차버린 광화문역을 무정차 통과해야 했다. 자유한국당 추산 3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도심에 몰리면서 통신 장애 또한 빈발했다.
이날 거리로 몰려나온 국민들은 건국과 산업화를 거쳐 자유민주주의를 이뤄온 대한민국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애정을 가진 우리 사회의 메인스트림이자 '도덕적 다수'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합병된 모 시중은행에 다녔다는 60대 남모 씨는 "내가 87년 항쟁 때 '넥타이부대'로 여기 서 있었던 사람"이라며 "87년 민주항쟁 때도 사람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해방 이후 최대 인원 아니냐"고 말했다.
세종대로와 종로 같은 큰 대로 뿐만 아니라 골목골목마다 집회 인파가 꽉꽉 들어차 지나다니기도 어려웠다. 통의동 골목에서 만난 50대 여성 김모 씨는 "일행을 놓쳤다"며 "(일행이) 동십자각이 보인다고 했는데, 사람이 많아 그런지 전화가 잘 터지지도 않고, 사람을 헤치고 내가 그리로 갈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평생 집회는 처음이다. 나까지 나올 줄이야"
"내가 찍은 문재인이 지금 대통령이 맞느냐"
평생 집회에 나온 것은 처음이라는 사람이 유독 많았다. 그간 보수 성향 집회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아이 데리고 나온 젊은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부부가 함께 나온 30대 중 남편 최모 씨는 "자한당(자유한국당) 당원도 아니고, 교회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라며 "지난 대선에서도 1번(문재인 대통령) 찍었던 사람인데, 내가 찍은 문재인이란 사람이 지금 대통령 맞나 싶다"고 토로했다.
최 씨는 "'조국 사태'로 (문 대통령에게) 너무 실망했다"며 "제발 정신 좀 차리시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밝혔다.
경기도 분당에서 온 70대 정모 씨는 "(집회에) 나가자는 연락이 모임 세 군데에서 왔다. 전혀 이런 것과는 관련 없는 줄 알았던 사람이 (지금 집회에 나온)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왔다"며 "도저히 이런 것에는 나오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람인데…"라고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청와대 쪽을 향해 "이제 빨리 (조국 법무장관을) 끌어내라"고 요구했다.
곁에 있던 60대 여성 최모 씨도 "(조 장관이)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평생 집회는 처음이다. 나까지 거리에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비 온다고 해서 오지 말까 했는데 날이 개어서 왔다. 사람이 너무 많다"며 스스로 놀라워하는 '소프트한' 집회 참가자들이 상당수 있었던 반면, 이미 수 차례 장외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도 있었다. 이들에게서는 좀 더 강경한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50대 이모 씨는 "조국은 언제 물러나는거냐. 독하다"라며, "문대통령이 물러난 다음에야 물러날 것"이라고 분노를 여지없이 쏟아냈다. 제기동에서 왔다는 70대 여성 송모 씨도 "조국은 어떻게 이리도 강심장이냐"며 "좌파들, 특히 강남좌파가 참 뻔뻔하다"고 분개했다.
70대 이모 씨는 "(집회가 끝나고) 청와대 쪽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행진하는 것 같던데, 나같은 노인들은 힘이 들어서 거기까지는 못 가"라며 "마음 같아서는 청와대 앞에서 소리라도 질러서 좀 놀라게 해주고 싶은데…"라고 아쉬워했다.
"조국은 독하다, 강남좌파가 참 뻔뻔하더라"
"친정부 시위 조직한 모습에 '이게 나라냐'"
이날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은 집회 숫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달 27일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서초동 검찰청앞 집회가 되레 중도보수 성향 국민들의 마음 속에 불을 질렀다는 관측이 사실로 여겨졌다.
30대 박모 씨는 "(광화문집회 인원이) 200만 명은 확실히 될 것 같다. 200만 명은 된다, 충분히"라는 말을 반복하더니 "(친문 세력은) 그 때 3만 명밖에 안 되는 것을 갖고 200만 명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군중의 많고 적음은 본질이 아니다'라는 논평을 냈다는 말을 듣자 실소하며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진작 하지 그랬느냐"고 비판했다.
20대 이모 씨는 "나도 박근혜 탄핵할 때 촛불 들었던 사람"이라며 "촛불 덕분에 그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는데, 마치 그 때 '태극기 집회' 하듯 친정부 시위를 조직하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앞서의 60대 여성 최 씨는 "사람들이 둘셋씩 손잡고들 나왔는데,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주최로 강압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했다고 하는 모양이더라"며 "야당이 어떻게 사람을 강압적으로 동원하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날이 저물고 도심에서 군중이 흩어지는 무렵, 조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건강을 이유로 받던 검찰 조사를 중단하고 귀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70대 이 씨는 "조서를 꾸미다보면 다시 확인을 하는데, 그것도 안했다고 하더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 아니냐"고 강력히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