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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뛴다-98] 손경식 경총 회장, 위기 탈출 ·위상 재정립 이끈 백전노장

박영국 기자
입력 2019.09.30 06:00 수정 2019.09.30 06:15

친 노동계 정부의 경총 패싱, 지도부 공백 사태 속 경총 회장 취임

재정운영체계 투명화, '기업 경영전반 대변' 위상 재정립

친 노동계 정부의 경총 패싱, 지도부 공백 사태 속 경총 회장 취임
재정운영체계 투명화, '기업 경영전반 대변' 위상 재정립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018년 3월 19일 국회를 방문해 3당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018년 3월 19일 국회를 방문해 3당 원내대표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8년 2월. 당시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던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희수(喜壽·77세)를 훌쩍 넘긴 경영계 원로에게 구원을 청했다.

한때 또 다른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를 장기간 이끌었던 이 백전노장은 지체 없이 달려와 경총의 지휘봉을 잡았고, 경총의 혼란을 정리하고 조직을 개혁함은 물론, 기존보다 더 넓은 범위의 역할을 하는 경제단체로 변모시켰다. 제7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얘기다.

경총의 위기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노사 관련 사안에서 사측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의 역할을 해왔던 경총과 역대 가장 노동계 친화적인 공약을 내걸고 출범한 문 정부의 충돌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특히 과거 보수정권 때도 경영계의 입장에 서서 정부와 정치권에 쓴 소리를 쏟아내던 당시 김영배 경총 부회장의 존재는 문 정부에게는 눈엣가시였다.

대통령선거 전부터 대선 후보들의 포퓰리즘 공약을 비판하며 “성장 없는 분배는 파이를 줄이고, 무임승차를 부추겨 다 같이 빈곤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세금을 쏟아 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임시방편적 처방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던 김 전 부회장은 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주요 공약사항인 ‘최저임금 1만원’,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다.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질책했고, 경총은 회원사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만들었던 비정규직의 현황과 해법 등을 정리한 ‘비정규직의 오해와 진실’이란 책자 발간을 보류하는 등 몸을 낮췄다. 박병원 당시 경총 회장 명의로 일자리위원회에 반성문 성격의 서한을 제출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이후 급격히 기세가 위축된 경총은 그해 7월 2018년 최저임금이 16.4%나 인상되는 과정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이 때문에 회원사 중 하나인 전방이 탈퇴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하는 등 회원사들의 반발에도 직면했다.

지난해 2월에는 ‘지도부 공백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당시 박 회장과 김 부회장이 동반 사퇴 의사를 밝히며 경총은 차기 회장단 선임에 나섰지만 회장 선임을 위해 구성된 전형위원회에서 차기 회장 내정자였던 박상희 대구 경총 회장의 선임을 반대하면서 ‘회장 없는 경총’이 돼버린 것이다.

당시 지도부 공백 사태의 배경에는 중소기업 출신인 박 회장에 대한 대기업 회원사들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큰 소수의 대기업 회원사들과 다수의 중소기업 회원사들간 알력 끝에 경총이 내놓은 해법이 바로 손경식 회장이었다. 재계 원로이자 오랜 기간 대한상의를 이끌며 경제단체 운영 경험도 풍부한 손 회장이 혼란에 빠진 경총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이견이 없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018년 11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80회 경총 이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018년 11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80회 경총 이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

손 회장 체제 출범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됐다. 지난해 4월 손 회장의 추천으로 선임된 송영중 부회장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를 중단하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노동계 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가 회원사들의 반발로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총 사무국 조직과 마찰을 빚으며 ‘재택근무 논란’ 등 사무국의 파행적 운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각종 논란으로 송 전 부회장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경총은 결국 임명 3개월 만인 지난해 7월 송 전 부회장을 해임했다.

김영배 전 부회장의 업무추진비 횡령 의혹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고용노동부의 검찰 고발, 국세청 세무조사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동안 경총 내부의 각종 혼란을 정리하고 조직 안정화에 힘쓰던 손 회장은 올해 1월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경총은 먼저 그동안 논란이 됐던 회계 및 예산제도를 뜯어 고쳐 투명성·책임성 강화에 나섰다. 투명한 재정운영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올해부터 11개 회계구분을 사업 성격에 따라 4개로 통합 조정하고, 단위사업을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사업예산제도’를 신규로 도입해 사업 계획 및 예산 편성을 진행함으로써, 예산집행 과정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도록 했다.

그동안 노사관계에 집중됐던 활동 영역도 ‘기업 경영전반 대변’으로 확대했다. 정책 연구조사활동 강화, 민간 경영정책 전문가 풀 확대, 경제·노사관계 각 분야 오피니언 리더 중심 ‘경영발전자문위원회’ 신설 등을 통해 경제단체로서의 위상 재정립에 나섰다.

내부적인 문제를 정리한 경총은 대외적으로도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사대등성 확보를 위한 각종 노동계 친화적인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한편,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기업지배구조 개편,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 등 기업의 경영부담 확대 이슈에 대해서도 경영계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있다.

경총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도 제동이 걸렸다. 지난 2년간 급격하게 인상됐던 최저임금은 2020년도 인상률이 2.9%로 완화됐다. 비록 경총 등 경영계가 주장하던 삭감 혹은 동결에는 실패했으나 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손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고, 대통령 주최 기업인 간담회에도 참석하는 등 과거의 ‘경총 패싱’ 우려도 해소됐다.

경총을 존립 위기로까지 내몰았던 혼란이 빠르게 정리되고, 경제단체로서의 위상이 회복됨은 물론, 활동 영역이 ‘기업 경영전반 대변’으로까지 확대되기까지 경험과 합리성을 모두 갖춘 손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 정권 하에서 경총의 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면서 “그렇게 되기까지는 회원사들과 사무국 임직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손경식 회장의 맨파워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경험과 카리스마를 갖추면서도 합리적인 성향인 손 회장이 어려운 시기에 경총을 맡아 큰 일을 해줬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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