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 유승준은 처벌받은 적이 없다
입력 2019.07.13 07:00
수정 2019.07.13 03:46
<하재근의 이슈분석> 국익을 해칠 외국인 입국 통제는 우리 주권 사안
<하재근의 이슈분석> 국익을 해칠 외국인 입국 통제는 우리 주권 사안
대법원은 유승준과 다른 사례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한국이 유승준에게 유달리 가혹하게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동안 유승준의 입국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유승준에게만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유승준과 비교할 사람이 없다. 형평성이라는 건 비슷한 조건의 사례들 간에 적용되는 것인데, 유승준과 비슷한 조건의 사례가 없다는 얘기다. 유승준은 모범적인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군입대도 공언했다. 대한민국은 그에게 공익요원 복무와 연예 활동 병행을 허용하는 특혜도 베풀었다. 원래 출국이 불가능한 시기였는데 병무청이 특별히 보증까지 서가면서 일본 공연 출국을 도와줬다.
그런데 유승준은 이 모든 한국의 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 공연 직후 귀국하지 않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대한민국은 충격과 배신감에 발칵 뒤집혔다. 유승준은 그런 배신 행각을 벌이고도 한국에 돌아와 연예활동을 하려는 듯했다. 병무청은 그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국방부에 요청했고 국방부 장관은 입국불허 조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승준은 한국에서 국적 포기 병역기피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이 유례 없는 사례를 누구하고 비교하며 누구하고 형평을 맞춘단 말인가?
유승준은 계속해서 한국을 위협했다. 2015년에 저돌적인 인터넷 방송 사과로 한국 민심을 자극했고, 바로 이어 재외동포 비자 발급 요청, 발급 거부 후 소송 제기, 패소 후 항소와 항고, 지난 1월 음원 발표 등 끊임없이 한국을 건드렸다. 최초에 배신과 국적 포기로 1차 가해를 한 후 지속적으로 가해행위를 한 셈이다. 그로 인해 많은 한국인이 정서적으로 저하됐고 사회적으로 공분이 일었다. 유승준이 2차, 3차 가해를 가하고 있고 한국인은 피해자인 것이다.
2002년에 유승준이 연예활동을 위해 입국하려 했을 때 한국은 분명히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는 계속해서 연예활동을 위해 입국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자식과 한국 땅을 밟고 싶다며 인도주의적 명분으로 포장하지만, 관광비자가 아닌 취업활동이 가능한 F4비자를 굳이 신청한 것을 보면 연예활동이 목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2002년에 거부당했던 그 시도를 한국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하는 듯한 느낌이다.
유승준은 소송까지 제기하는 등 자신이 부당한 처벌을 받고 있다며 억울한 사람 행세를 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듯한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인이 그를 부당하게 처벌하는 듯한 구도를 만들어 한국인을 악인으로 모는 가해행위다.
사실 한국은 유승준을 처벌한 적이 없다. 한국인이라면 병역기피로 처벌받겠지만, 그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한국은 나라를 버려 외국인이 된 그에게 다만 국내 진입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의 진입은 민심과 군심에 상처를 입히는 가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유승준은 한국이라는 좁은 땅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본인이 선택한 미국에서도 당연히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처벌할 힘이 없으니 한국 국경을 경계로 서로 건드리지만 말고 각자 알아서 살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유승준은 기어이 한국 국경까지 열겠다고 한다. 배신당하고도 유승준을 처벌 못한 한국이 그가 원하는 대로 문까지 열어줘야 하나?
국적 포기로 병역을 피한 다른 사람들보다 유승준에게만 엄격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다른 기피자들에게도 보다 엄격하게 판단하는 것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유승준은 스스로 원해서 외국인이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병역기피의 상징이며, 그가 버젓이 한국내 활동을 할 경우 수많은 군인 및 국민을 허탈하게 할 유일무이한 외국인이다. 이렇게 국익을 해칠 외국인의 입국 통제는 우리 주권 사안이다. 유승준은 한국에 입국해 한국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했는데, 그가 가장 크게 기여할 길은 한국인을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두는 것 아닐까.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