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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알라딘 밀어낸 페미니즘 열풍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07.01 08:18
수정 2019.07.01 08:18

<하재근의 이슈분석> 여성 캐릭터 위상 강화 좋으나, 납득이 뒷받침 되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여성 캐릭터 위상 강화 좋으나, 납득이 뒷받침 되야

ⓒ알라딘 포토티켓 이미지

디즈니 영화 ‘알라딘’의 흥행돌풍이 이어진다. 개봉 6일째 100만, 11일째 200만, 16일째 300만, 19일째 400만, 25일째 500만, 30일째 600만, 34일째 700만, 39일째 800만 관객을 돌파했다. 994만 관객을 동원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48일보다 800만 돌파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600만 돌파 후 800만 돌파에 이르는 시간이 10일 미만이다. 뒷심이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천만 관객도 가능한 흥행열기다.

워낙 원작의 힘이 압도적이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으로 이어지면서 디즈니 왕국의 부활을 이끌었던 바로 그 콘텐츠이기 때문에 흥행성이 이미 검증됐다고 할 수 있다. 그 애니메이션을 현대 디지털 기술로 실사화하면서 화려한 영상미를 선보였고, 귀를 사로잡는 노래들도 그대로 재현해 관객의 마음을 잡았다.

운도 따랐다. ‘엑스맨 : 다크 피닉스’,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과 같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폭망’하면서 ‘알라딘’에 꽃길을 열어줬다. 과거 애니메이션을 봤던 세대가 이제는 중년이 돼서, 그들에겐 복고 콘텐츠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족관객으로 가세해 흥행 폭발력이 더 강해졌다.

이번 실사판 ‘알라딘’의 가장 큰 특징은 자스민 공주의 위상 변화다. 이 작품은 ‘알라딘’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주인공은 알라딘이다. ‘슈퍼맨’의 주인공이 슈퍼맨인 것과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자스민 공주를 알라딘보다 더 부각시켰다. 영화 절정 부분에 나오는 솔로곡도 알라딘이 아닌 자스민 공주의 몫이다. 알라딘 역의 메나 마수드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주인공치고는 이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데, 자스민 공주를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남자주인공을 인상이 강하지 않은 배우로 캐스팅한 것 같은 느낌까지 준다.

페미니즘 열풍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투운동’과 함께 페미니즘 물결이 거세졌고 곳곳에서 그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디즈니가 그 흐름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이런 여성주의적 설정이 영화 주관객층인 여성관객에게 좋은 느낌을 줘 흥행돌풍이 더 강해졌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더 강화될 걸로 보인다. 하지만 너무 억지스럽게 페미니즘을 반영한 설정이 많아지면 몰입이 방해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부작용의 단초가 보인다.

제목부터가 ‘알라딘’이다. 원래 남주인공 중심인 이야기인데 여주인공 위상을 키우려 했을 때부터 위험요인이 있었다. 이왕 키우려고 했으면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설정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런 설정 없이 그저 페미니즘 열풍에 맞춰 당위적으로 여주인공을 그린 느낌이다.

극중에서 자스민 공주는 왕(술탄)이 되려고 한다. 그런데 말로만 왕이 되고 싶다고 할 뿐, 국가를 통치할 준비는 하지 않는다. 참모들과 정책을 논의하지도, 통치준비를 하지도 않는다.

말로만 포부를 밝히던 자스민 공주가 마침내 역할을 하는 건 자파가 왕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했을 때다. 역모가 터진 것인데, 작품은 이걸 여성에 대한 억압 프레임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자스민 공주가 (남성권력이 여성에게 침묵을 요구하지만) ‘난 침묵하지 않을 거야’라며 ‘스피치리스’(Speechless)를 부른다. 반역이 일어났고 쫓겨난 사람은 왕인데도 페미니즘 시각만 부각시키는 것이 억지스럽다.

공주가 역할을 하는 것도 특별히 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근위대장에게 하소연한 것뿐이다. 당위적으로, 강박적으로 여주인공의 위상을 강화하려고만 했을 뿐 그 내용은 제대로 채워 넣지 못한 것이다.

이런 어색한 억지 페미니즘 설정이 최근 들어 종종 나타난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 난전 중에 매우 어색하게도 여성 전사들만 모여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그렇다. ‘캡틴마블’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운동능력이 약하고 그래서 남성 운동팀에서 여성이 함께 뛰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도 그걸 남성사회에 의한 부당한 억압인 것처럼 그렸다.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의 내용 없는 위상 강화도 이런 흐름이다. 아직은 크게 선을 넘은 것이 아니어서 관객의 호응이 이어진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흐름이 더 강화돼서 억지스러움이 커진다면 반발이 나타날 것이다. 여성 캐릭터의 위상을 강화하는 건 좋은데,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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