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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의외의 천만급 흥행 만든 힘은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06.10 08:20
수정 2019.06.10 08:18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감과 사회적 성찰의 계기까지 제공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감과 사회적 성찰의 계기까지 제공

한국 영화 최초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흥행돌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4일 오후 여의도 한 극장 티켓박스에 '기생충'의 포스터 화면이 보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기생충'은 개봉 2일 만에 100만 관객, 3일 만에 200만, 4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 했으며 평일인 4일에도 관객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기생충’이 칸영화제 대상의 힘으로 어느 정도 흥행을 할 거란 건 이미 예측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흥행은 그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개봉 10일째에 벌써 700만 관객 돌파로, 이 정도면 천만 영화에 준하는 흥행 속도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봉준호, 송강호 콤비에 대한 관객의 기대가 크다고 해도, 요즘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예술 영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우리 시장 분위기 때문에 천만 흥행까진 어려워보였는데 무엇이 우리 관객들을 ‘기생충’에 열광하게 한 것일까?

‘인터스텔라’의 엄청난 흥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관객들은 요즘 ‘적당히’ 지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를 선호한다. 정말로 수준이 높아서 너무 난해하면 안 되고, 일반적인 수준보다 약간 높을 때 관객이 만족감을 느낀다. ‘기생충’은 칸영화제를 통해 보증 받은 영화치곤 그 상징이 난해하지 않아서, 빈부격차를 지상과 지하라는 아주 직접적인 상징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관객 눈높이에 맞은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도 흥행에 한몫했다. 물론 정말 재미 하나만 추구하는 상업영화처럼 아주 재밌는 수준은 아니지만, 칸영화제 보증 받은 영화치곤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에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요즘 관객들 취향하고도 맞아떨어진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고 할 정도로 장면 장면을 세심하게 연출하고 곳곳에 깨알 상징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우리 관객들은 극 속의 작은 상징들을 마치 문제풀이처럼 하나하나 풀이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영화 분석도 이런 상징 문제풀이 같은 성격이다. 그런 세태와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 스타일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기생충’의 상징들을 밝혀내겠다는 N차 관람 열풍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많은 관객들이 ‘기생충’의 세계관에 공감을 느낀 것이 가장 큰 흥행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은 대놓고 빈부격차를 수직적 구도로 그리면서 하층의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했다. 그리고 하층을 기생충 또는 바퀴벌레라고 했다.

극 속에서 하층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계획이다. 송강호의 아들이 마지막까지 계획을 세우지만 그게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관객은 안다. 우리 현실에서도 하층의 계층 탈출 계획은 미몽에 그칠 때가 많다. 2000년대 이후 계층 탈출 계획 세우기가 유행했다. 바로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열풍이다. 하지만 이제 포기하고 ‘소확행’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작고 소소한 행복의 저변에 깔린 것은 바로 절망이었던 것이다. ‘기생충’의 절망에 관객이 공감한 이유다.

‘기생충’은 희망 없는 분리 사회의 파국을 경고한다. 공생할 수 없는, 기생충과 숙주로 분리된 사회엔 파괴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렸다. 그 경고에 2008년 이후 폭동 등을 겪은 서구 심사위원단이 공감했고, 우리 관객들도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공감 속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나는 저 계단의 어디쯤에 해당하는 걸까, 나는 기생충이 아닌 걸까?’라는 상념에 빠져든다. 적당히 재미있는 영화가 칸영화제가 보증하는 지적 만족감을 주고, 공감과 사회적 성찰의 계기까지 제공해준 것이 놀라운 흥행을 만들었을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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