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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기생충들 위에 선 사회의 불안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06.01 06:00
수정 2019.06.01 04:35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생의 세상이 되어야 위태로움도 사라질 것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생의 세상이 되어야 위태로움도 사라질 것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이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점에서 영화 '기생충' 언론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스포일러 주의) ‘기생충’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문제를 그렸다는 것은 개봉 전부터 익히 알려졌었다. 영화가 개봉된 후 봉준호 감독이 계급 문제를 어떻게 그렸는지가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계급 갈등을 다룬 사회적 작품들에선 기층 민중이 선한 쪽으로, 기득권 집단이나 사회구조가 그 반대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하층이 악하고 부유층이 선하다. 하층은 정말 글자 그대로의 기생충이었다.

그들은 어둡고, 습하고, 냄새나는 반지하 또는 지하 공간에서 부유층이 내려주는 것들을 받아먹으며 산다. 부자의 평화로운 집 지하에선 기생충들이 서로 부자의 집사가 되겠다며 악다구니를 쳐댄다.

부유층은 착하고 순수하다. 그래서 잘 속는다. ‘기생충’엔 이런 대사들이 나온다.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고, 꼬인 데가 없다", "부잣집 애들은 구김살이 없어. 돈이 다리미야. 돈이 구김살을 쫙 펴준다니까."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자들은 주로 갑질하는 망나니나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현실에서 부자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으며 험한 일 안 해보고 곱게 자란 사람들은 정말 순수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완전히 다른 경로를 통해 형성된 사람들이 나타난다. 부자들은 그들끼리 사는 지역, 그들끼리 다니는 학교를 통해 그들끼리 인맥을 형성하고 혼인해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 다시 비슷한 경로로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다시 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낳을 때쯤 되면 지하에서 악다구니 치는 인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이 공부도 잘 하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하다는 말이 진작 나왔었다.

‘기생충’의 부유층은 그런 느낌의 사람들이다. 우아하고 구김살 없고 상식을 아는 사람들. 막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부리는 사람하고도 편하게 대화하고 고개까지 숙일 줄 안다.

하지만 반드시 ‘선’을 지킨다. 하층의 세계와 자신들의 세계를 가르는 선. 그들은 그 선 너머에서 풍기는 지하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구분한다. 사람 앞에서 대놓고 갑질을 하진 않지만, 선 너머에 사는 ‘것들’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는다. 하층의 터전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폭우가 그들에겐 그저 미세먼지를 쓸어간 즐거운 단비 정도였다.

기생충들이 육탄전을 펼치는 극한 상황에서조차 상층은 지하 냄새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이것이 마치 연체동물처럼 기생하며 살려던 가장의 마지막 자존감을 부순다. 분노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던 가장의 폭발. 상류층의 평화로운 일상은 파괴된다. 그들을 감싸던 눈부신 햇살 속에서. 그리고 가장은 어둡고 습한 곳으로 들어가 진짜 기생충의 삶을 시작한다.

그렇게 작품에선 넘을 수 없는 선으로 분리되고, 그 선 너머에 대한 혐오가 도사린 사회는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다는 경고가 읽힌다. 햇살이 넘실대고 풍요가 넘치는 평화의 성채 같지만 기실 칼끝 위에 얹힌 황금덩이처럼 위태로운 것이다. 그것이 기생충들이 떠받친 세상이다. 가진 자가 악인이 아니어도 이 구조 자체가 불안을 잉태한다. 하층이 기생하도록 하지 않는, 공생의 세상이 되어야 이 위태로움도 사라질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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