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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마블 어벤져스에 열광하나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04.27 18:04
수정 2019.04.27 18:06

<하재근의 이슈분석> 한국 관객과 마블 사이에 각별한 유대 형성

<하재근의 이슈분석> 한국 관객과 마블 사이에 각별한 유대 형성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이틀째인 지난 25일 오전 서울의 한 영화관에 관람객이 티켓을 예매하고 있다.개봉 4시간 30분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대한민국 영화 사상 최단기간 100만 돌파 신기록에 이어 오늘 중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며, 다가오는 주말에는 일일 관객수 역대 최고 기록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한국인의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 사랑은 유별나다. 마블사가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아시아 프레스 컨퍼런스를 한국에서 열었을 정도다.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훨씬 많고 경제규모도 큰 일본이 아닌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마블이 한국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한국이 마블을 특별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다. 마블 MCU의 아버지인 케빈 파이기 대표는 이번에 한국을 찾아 "한국은 해외에서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라고 했다. 시장의 크기가 아예 다른 차원인 중국을 빼면 한국이 세계에서 마블 영화에 가장 수익을 안겨준다는 뜻이다.

이러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마블 스타들이 한국을 자주 찾는다. 이번에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브리 라슨, 안소니 루소-조 루소 감독 등이 한국을 찾아 시장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팬서비스를 했다.

한국인이 왜 미국 마블 본사까지 놀랄 정도로 유독 마블 영화에 열광하는지는 미스터리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두 편 연속 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번에도 천만 돌파가 유력한 상황인데, 정상적인 흥행은 아니다.

천만 흥행, 즉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동원하는 사태는 단순히 영화의 재미만으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와 어떤 접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회적 신드롬이 일어나야 천만 흥행이 터진다. 그래서 역사극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천만 흥행에 유리한 것이다. 외국 오락 영화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천만 흥행이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어벤져스’ 시리즈는 무려 3편 연속 천만 흥행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왜 한국인은 ‘어벤져스’에 빠져든 걸까?

우리 영화 시장은 비정상적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호의적이었다. 유럽 영화들을 비롯해 세계엔 다양한 영화들이 있지만 우리 관객들은 오직 미국 오락영화만 찾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2000년대 이후 이런 현상이 아주 심해졌다.

미국 오락영화 중에서도 대형 액션 블록버스터 편중 현상이 점점 더 심해졌다. 과거엔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주요 국제영화제 수상작들이 국내 관객들에게 크게 주목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데 이후엔 영화제 수상작, 평단 추천작 등은 관객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 됐고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의 위상이 점점 더 강화됐다. 우리 영화 시장의 획일성이 강화됐다는 이야기다.

그런 흐름이 한창 심화되던 2008년에 MCU의 출발인 ‘아이언맨’이 등장했다. 그후 11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독점 심화와 마블 MCU의 전개가 맞물렸다.

마블 MCU가 처음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은 건 아니었다. ‘토르: 천둥의 신’은 169만 명,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는 51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12년에 ‘어벤져스’ 1편이 700만 관객을 동원한 후 상황이 달라진다. 이때부터 마블 영화들의 대흥행 역사가 시작됐다.

히어로들이 집합해 초대형 액션을 선보인 ‘어벤져스’ 1편의 성공이 마블 시리즈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쏠림 현상이 강화되고 있었는데, 마블 시리즈가 헐리우드 대표 선수로 각인되니 시장의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됐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기이하게 잘 되는 나라에서 헐리우드 대표 브랜드가 되자 대단히 기이한 흥행이 이어질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아무리 대표 브랜드가 됐어도 품질이 들쭉날쭉했다면 충성도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블 시리즈는 영화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장기간 성공적인 품질관리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마블 영화는 기본 이상은 한다는 절대적 믿음이 만들어졌다.

한국 관객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원하는 것은 화려한 액션과 잠시 세상시름을 잊을 수 있는 재미인데, 마블 시리즈는 너무 무겁거나 복잡하지 않은 밝은 내용과 대규모 액션으로 우리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쏠림 현상이 작동했다. 일단 터지면 사람들이 몰려 더 잘 되는 나라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된다. 불과 1년 만에 전국의 젊은이들 겨울 점퍼가 롱패딩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는 나라. 유행을 좇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마블 영화가 일단 유행으로 자리 잡자 더 폭발적인 흥행이 만들어졌다.

스크린 독점을 자제하거나 규제하는 문화가 있는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독점을 방임하는데, 이점도 마블 영화가 기록적인 규모로 ‘한 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마블 측에서 한국을 챙기기 시작한 것도 한국 시장의 마블 영화 충성도를 키웠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이 한국을 찾아 소탈한 모습을 보였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서울에서 촬영해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국민영화 반열에 올랐고, '블랙팬서'는 부산에서 찍었다. 그래서 한국 관객과 마블 사이에 각별한 유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작용해 대한민국이 ’마블민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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