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허를 찌른 대장정 마무리
입력 2019.04.25 08:25
수정 2019.04.25 08:25
<하재근의 이슈분석> 액션 물량공세 아닌 드라마로 선택한 것은 나름 효과
<하재근의 이슈분석> 액션 물량공세 아닌 드라마로 선택한 것은 나름 효과
‘어벤져스:엔드게임’이 허를 찔렀다. 액션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마지막편이니 당연히 초대형 액션의 집합체일 거라고 기대됐다. 등장하는 히어로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몇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액션씬을 소화하고 마지막에 모두 모여 대형 액션으로 클라이막스를 장식할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벤져스:엔드게임’은 드라마를 선택했다. 헐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드라마가 강화되면 보통은 처지게 마련이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은 그렇지 않다. 3시간 내내 흥미진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한다는 게 미덕이다. 대형 히트 액션 블록버스터라도 중간 드라마 부분에서 한 번은 졸리는 게 보통인데,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졸림이 강도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
11년 세월이 쌓은 힘 때문이다. ‘어벤져스’ 히어로들이 절망하고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것은 드라마를 위한 과도한 설정 같아서 납득되지 않지만, 과거 작품들을 상기시키는 전개는 대형 액션 없이도 관객을 몰입시킨다. 11년 동안 관객들에게 사랑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하나 상기시킬 때 관객이 추억에 젖으면서, 과거 설정이 뒤틀릴 때 새로운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블 ‘어벤져스’ 세계의 마지막을 액션 물량공세가 아닌 드라마로 선택한 것은 나름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액션 세례를 기대한 관객에겐 실망이 있겠지만, 대장정의 마무리에 걸 맞는 여운을 안겨주는 설정이다. MCU의 문을 연 히어로가 마지막을 장식하고, 다른 곳에서 온 히어로가 자기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설정도 감동을 준 퇴장 설정이었다.
물론 액션이 아예 없진 않다. 모든 히어로와 외계 군단이 총집결한 대형 액션씬이 당연히 제공된다. 거대 군단이 모이는 장면엔 장쾌한 쾌감이 있다. 캡틴 마블이 압도적으로 강해서 액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했으나, 이 부분은 캡틴 마블이 바쁘다는 설정으로 해결했다. 캡틴 마블은 담당 구역(?)이 넓어서 지구에는 가끔 온다. DC의 슈퍼맨처럼 막판 구원자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계속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히어로들이 활약할 시간은 충분하다.
의문이 모두 풀리지 않은 점은 아쉽다. 예를 들어 전작에서 왜 헐크가 나오길 거부했는지, 닥터 스트레인지가 승리 가능성을 예측할 때 앤트맨의 양자세계나 캡틴 마블의 등장을 감안한 것인지, 타임 스톤을 왜 타노스에게 줬는지 등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백 투 더 퓨처’와는 달리 과거를 바꿔서 미래에 영향을 미쳐 대체현실을 만들지 않는다면서 극중에서 한 명이 과거를 바꾼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하지만 어차피 액션 영화에 시나리오 전체가 치밀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벤져스:엔드게임’ 정도면 나름 준수한 시나리오로 마무리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마블 세계관의 방향성을 예측하게 하는 장면도 있다. ‘캡틴 마블’의 짧은 머리, 여성들이 (작위적으로) 진형을 짜는 장면, 흑인에게 유산이 이어지는 장면 등은 마블이 향후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코드를 강화할 것이라는 걸 예고한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이 작품이 MCU 11년 ‘인피니티 사가’의 결산, 페이즈3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페이즈3의 작품이 하나 더 남았다고 한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페이즈3의 진짜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이 ‘어벤져스:엔드게임’의 여운을 달래주는 에필로그 겸 페이즈4의 예고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페이즈4에 마동석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마지막에 인물 소개만 나오고 별도의 쿠키영상은 없으니 인물소개까지 보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해도 되겠다. 인물소개 마지막에 아이언맨이 나오면서, 아이언맨이 ‘인피니티 사가’의 주인공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페이즈1부터 페이즈3까지의 MCU ‘인피니티 사가’를 아이언맨이 열고 아이언맨이 닫은 셈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