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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천국, 천국의 문이 닫히나?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9.04.28 05:00 수정 2019.04.27 23:13

<알쓸신잡-스웨덴㊻>이민청 예산 대폭 축소, 이주 업무 절차 지연

부정 시각 늘면서 2017년까지 급증하던 난민 인원 급격히 줄어들어

<알쓸신잡-스웨덴㊻>이민청 예산 대폭 축소, 이주 업무 절차 지연
부정 시각 늘면서 2017년까지 급증하던 난민 인원 급격히 줄어들어


스톡홀름 솔나(Solna)지역에 있던 대표적인 이민청. 그러나 예산 축소에 따라 지난 해 8월 폐쇄됐다.(사진 = 이석원) 스톡홀름 솔나(Solna)지역에 있던 대표적인 이민청. 그러나 예산 축소에 따라 지난 해 8월 폐쇄됐다.(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한때 이민의 천국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30여년 동안 전 인구의 3분의 1이 미국으로 이민길에 올랐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전 인구 대비 이민자 비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스웨덴이다. 이민의 문이 넓었고, 호혜적이었으며, 혜택도 많이 주어졌었다.

그런데 2019년 들어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나 아프톤블라데트(Aftonbladet) 등의 스웨덴 언론에서 일제히 ‘이민청의 예산이 삭감됐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 정부는 이민청(Migrationsverket)의 예산을 2019년 들어서 800만 크로나(약 10억원) 더 줄이기로 했고, 직원 수도 2018년까지 8000명 선을 유지했지만 새해 들어서는 60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감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민청 관계자는 “2015년 이후로 이민자, 특히 난민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예산과 인력을 거기에 맞춰서 적절히 조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스웨덴 이민청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난민 신청은 약 16만 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만 1000명에 그쳤다.

유럽 국가 중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난민을 받았던 스웨덴도 국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 3년 동안 난민 수용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로 전환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는 9월에 총선거가 있었고, 당시 집권 사민당조차도 난민에 대한 국내 불만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스웨덴이 난민 감소를 이유로 이민청의 예산과 인력을 감축한 것은 한국인 등 비난민으로서 스웨덴 이주를 계획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이 되고 있다. 즉, 스웨덴 이민의 문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스웨덴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민이라는 제도가 없다.

이민에는 대체로 2가지 형태가 있는데, 정치적 이민과 경제적 이민이다.

정치적 이민이란 망명이나 난민 등을 뜻한다. 자국에서 정치적인 탄압을 받는 경우나 전쟁 등의 이유로 자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를 신청하는 것을 말한다.

경제적 이민은 취업이나 창업 등을 통해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이주하는 것이다. 우리의 하와이나 멕시코,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역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정치적 이민은 허용하지만, 경제적인 이민은 허용하지 않는다. 편하게 표현해서 이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지, 정확히 얘기하면 일시적인 이주다.

그러면 스웨덴으로의 이주는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워킹 홀리데이, 중단기 연수, 방문 연구원, 대학원 유학, 포닥이라고 불리는 박사 후 연수, 기업 주재원 등 다양하다. 하지만 대체로 스웨덴으로의 장기 이주의 방법들은 아니다.

이민청은 늘 난민과 거주허가 신청 등을 하는 이민자로 북쩍인다. 최근 이민청들이 통폐합되면서 업무 처리는 지연되고 이에 따라 이민자들의 불편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이민청은 늘 난민과 거주허가 신청 등을 하는 이민자로 북쩍인다. 최근 이민청들이 통폐합되면서 업무 처리는 지연되고 이에 따라 이민자들의 불편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 장기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현지 취업과 창업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스웨덴 이민청으로부터 워크 퍼밋(Work permit. 취업 허가)이라는 것을 받아야 한다.

퍼밋(Permit)은 외국인의 입국을 허용하는 증명서인 비자(Visa)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스웨덴처럼 한국과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된 국가에서는 비자 없이 퍼밋만으로 입국이 가능하다. 90일 이내는 퍼밋 없이도 체류가 가능하고, 91일 이상 체류할 경우 퍼밋을 취득해야 한다.

취업 허가를 받은 사람은 스웨덴에 입국한 후 예약을 통해 이민청에서 UT카드라고 부르는 거주허가증(Uppehållstillstånd Kort)을 신청해야 한다. 취업 허가의 경우 UT 카드를 발급받으면 2년의 거주 허가 기간이 주어진다.

이 기간 중 스웨덴 시민들과 동일한 복지 혜택이나 조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 번호(Person nummer)를 세무서에서 신청해서 받는다. 이 번호까지 받으면 국적과 상관없이 스웨덴 시민과 거의 동일한 시민 자격이 주어진다. 참정권은 빼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민의 의미를 지닌 장기 이주를 위해서는 2년 후 취업 허가를 갱신해야 한다. 그러면 다시 2년 동안 체류할 수 있다. 그 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으며, 영주권을 받고 약 4~5년이 지나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시민권, 즉 국적 취득이 가능해진다. 영주권을 취득한 이후면 바야흐로 ‘스웨덴 이민’이 성사되는 셈이다.

스웨덴 이민청의 인력이 줄어들면서 취업 허가 심사 기간도 더 길어질 것이고, 거주허가증 발급의 기간도 더 길어진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취업 허가를 신청하고 심사를 받는 기간이 보통 3~10개월 정도였는데, 이미 하반기 때 6~15개월로 늘어났다.

거주허가증 신청도 오래 걸린다. 스톡홀름 등 주요 도시의 예약은 수개월 밀렸고, 신청한다 해도 발급받는 데까지 2~3주이던 것이 4주를 넘기기 다반사다. 물론 이민청의 업무는 아니지만 개인 번호를 받고 신분증(ID Kort)을 받는 시간도 길어졌다.

스웨덴이 경제적 이주의 선망지인 것은 비단 한국인들의 일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은 물론 거의 전 유럽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미국이나 캐나다와 중국과 일본,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이 경제적 이주의 선망국으로 스웨덴을 선택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이민청의 예산과 인력을 줄이는 이유를 ‘난민이 줄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난민은 저절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 스웨덴 정부가 난민 수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줄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반난민, 반이민을 내세우고 지난 총선에서 3당이 된 극우성향 스웨덴민주당 때문에 이는 더 심화될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 일부는 난민을 포함한 이민자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반가워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더 많은 사람들은 이민자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게 아직까지의 스웨덴이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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