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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의 자유’와 ‘해고가 두렵지 않은 삶’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9.03.30 05:00 수정 2019.03.29 15:38

<알쓸신잡-스웨덴㊷>고용 유연성이 가능한 스웨덴의 사회보장세

기업과 노조의 상호 협조 속에서 정부의 중재와 운용 기능 확보

<알쓸신잡-스웨덴㊷>고용 유연성이 가능한 스웨덴의 사회보장세
기업과 노조의 상호 협조 속에서 정부의 중재와 운용 기능 확보


스웨덴이 고용의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이 안정된 것은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사회보장이라는 사회적 안전장치 때문이다ⓒ데일리안 DB 스웨덴이 고용의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이 안정된 것은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사회보장이라는 사회적 안전장치 때문이다ⓒ데일리안 DB

스웨덴은 세계에서 고용 유연성이 가장 강한 몇 나라 중 하나다. 즉 고용과 해고가 상당히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80%가 넘는 스웨덴이 해고가 자유롭다는 것은 다소 의외의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면 우리의 경우와는 좀 다른게 있다.

스웨덴 기업들에도 부실 경영이나 대량 해고, 기업 폐쇄 등이 있다. 1990년대 경제 위기, 2008년 세계금융 위기 등을 겪으면서 수많은 굴지의 스웨덴의 대기업들이 쓰러졌다. 스웨덴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에릭손의 모바일 분야가 일본 소니에게 넘어갔고, 사브 오토모빌이 미국의 GM에 매각됐으며, 볼보의 승용차 부문이 미국 포드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스웨덴의 대기업도 경영난과 구조조정 등의 진통을 겪어왔다.

다만 기업들의 경영 악화나 공장 폐쇄 등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는 일이 스웨덴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스웨덴 대기업들이 재원을 담당하는 ‘사회보장세’라는 것이 있다.

경영 악화 등으로 인한 노동자의 해고나 회사의 폐업에 따른 실업 등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실업 노동자의 실업수당, 재취업교육비, 창업 지원 등을 부담하기 위한 사회보장기금의 재원이 되는 사회보장세는 스웨덴 기업이 법인세와 함께 담당하는 직접세다.

1970년대 처음 도입 당시 기업이 낸 사회보장세는 노동자 임금의 39%였다. 현재는 32% 가량으로 낮아지긴 했지만, 스웨덴의 사회보장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보장세로 운영되는 사회보장기금을 통해 실업자는 300일 간 실업급여를 지급받는다. 300일은 주말과 공휴일 제외한 업무일 기준이다. 그리고 300일 후에도 구직을 하지 못했을 경우 실업보험금고의 결정에 따라 추가 300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사회보장세는 실업급여 뿐 아니라 재취업을 위한 교육비도 지원한다. 여기에는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직업 교육은 물론 실업 상태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지급되는 교육보조금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창업을 할 경우 현금과 컨설팅 지원까지 책임져 준다.

2008년 에릭손이 애플과 삼성에 밀려 모바일 사업을 포기했을 때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에릭손에 근무했던 한 한국인 직원은 해고를 피할 수 없었지만 회사로부터 퇴직 후 1년간 연봉을 지급받았다.

1년 뒤에는 사회보장기금을 통한 실업급여 지급과 재취업 프로그램을 지원받았고, 이후 창업을 결심하면서 에릭손과 정부 사회보장기금의 창업 지원과 함께 잔여기간 실업급여도 일시불로 받았다. 그것을 기반으로 이 한국인 직원은 현재 스톡홀름에서 꽤 성공한 자영업자가 됐다.

스웨덴의 사회보장세를 관리하고 운용하는 사회보험청은 스웨덴 사회보장의 요체다.ⓒ데일리안 DB 스웨덴의 사회보장세를 관리하고 운용하는 사회보험청은 스웨덴 사회보장의 요체다.ⓒ데일리안 DB

또 2010년 스웨덴 자동차 회사 사브 오토모빌은 2018년 한국GM과 닮음 꼴이다. 2000년 GM에 매각됐던 사브는 10년 만에 경영악화로 다시 매각됐다. 당시 사브는 3600명의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노조는 회사에 항의를 했고 법정으로 이 문제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길거리에 나앉는 노동자도 없었고, 거리나 회사 앞에서 농성하지도 않았다. 이들을 사회보장기금을 통해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생계에는 지장이 없었다.

스웨덴의 대기업은 회사가 정상 운영될 때 사실상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 그것이 사회보장세다. 회사 경영의 결실을 노사가 함께 나누는 것 뿐 아니라 나중을 대비해 비축해놓는 것이다. 그게 세금의 형태다보니 기업은 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스웨덴의 대기업들은 OECD 평균은 물론 한국보다도 5%나 낮은 20%의 법인세를 내고도 시민들의 신뢰를 받는 편이다. 스웨덴 대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2008년까지 39%를 유지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따른 정리해고 등으로 28%로 내려갔지만 2014년 이후 다시 30% 중반까지 올라갔다.

결국 스웨덴의 기업들이 담당하는 사회보장세는 기업의 그 어떤 도덕 경영보다도 명확한 신뢰와 존경을 끌어내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또한 낮은 법인세, 비교적 자유로운 해고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노조, 그리고 사회 구성원 전반에 이르는 화합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던 회사를 떠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회사가 살아남는 게 스웨덴 경제를 유지 발전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한 2010년 사브 사태를 맞은 스웨덴 IF 금속노조 하칸 스코트 위원장의 말은 사회보장세의 토대 위에 세워진 ‘해고가 두렵지 않은’ 스웨덴 노동 문화를 잘 설명해 준다.

이른바 ‘스웨덴 모델’로 불리는, 1938년 스웨덴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조가 맺은 ‘살트셰바덴 협약(Saltsjöbadsavtalet : the Saltsjoebad agreement)’은 ‘해고의 자유’와 ‘해고가 두렵지 않은 삶’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었다.그리고 그것은 현재 스웨덴 복지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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