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자 연예대상과 2018 한국사회의 징후
입력 2018.12.24 08:18
수정 2018.12.24 08:20
<하재근의 이슈분석> 여성 예능의 부활 본격화…여성, 이슈의 중심으로
<하재근의 이슈분석> 여성 예능의 부활 본격화…여성, 이슈의 중심으로
보통 연예대상은 그해 예능계에서 인기를 끈 진행자들을 가늠케 한다.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신동엽 등이 대상을 받았을 때 그랬다. 또는 그해의 예능 트렌드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2017년 ‘미운 우리 새끼’ 어머니들의 SBS 연예대상 수상은 예능을 스타진행자들이 주도하는 시대에서 관찰예능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이런 수준이 아닌 사회변화가 연예대상에 반영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KBS 연예대상에서 해당 시상식 최초로 여성이 대상을 받은 사건이 바로 그렇다. 바로 이영자의 대상 수상이다.
올해 KBS 예능에서 이영자가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진 않았다. MBC에선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지만 KBS에선 그렇지 않았는데도 이영자가 K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여기엔 최근 이영자가 부각된 전체적인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올해 이영자가 부각된 것에는 먹방 열풍 속에서 이영자가 준비된 먹방 고수였다는 점, 인간미와 인간적인 스토리가 중요한 관찰예능 시대에 이영자가 매니저와의 유대관계로 인간적인 정서를 전해줬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이영자가 부각된 것을 우리 사회가 크게 반기고 사회이슈로까지 번진 것은 올해에 여성이 화두가 됐고, 마침 예능에서 한동안 여성이 사라졌었기 때문이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에 여성들은 예능판에서 축출되기 시작했다. 관찰예능으로 트렌드가 바뀐 이후에도 마찬가지여서 10년 이상 남성 독점이 이어졌다. 기혼여성은 주부토크쇼에라도 나오지만 미혼여성에겐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송은이가 방송사 밖으로 나가 개인방송의 길을 개척할 정도로 여성들의 입지가 미약했다.
그러다 올해 박나래, 송은이 등이 주목받으면서 여성 예능의 부활이 본격화됐다.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영자의 컴백이다. 연예계에 복귀했다는 뜻의 컴백이 아니라, 핫스타로 돌아왔다는 뜻의 컴백이다. 이영자는 여세를 몰아 송은이와 손잡고 여성중심 예능인 ‘밥블레스유’를 진행했다.
트렌드는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한동안 밀려났던 여성 예능의 부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게 됐다. 올해 나타났던 여성주의 열풍이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페미니즘 신드롬이 터졌다. 바로 이때 이영자 전성시대로 상징되는 여성 예능 부활 현상이 나타나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됐다. 여성 예능의 약진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더 커졌다. 단순한 예능 트렌드의 변화 그 이상의 상징성, 화제성, 사회적 의미가 생긴 것이다.
이영자가 수영복 차림으로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선 것도 사회 흐름과 조응해 폭발력이 커졌다. 바로 탈코르셋이다. 올해 여성 앵커가 안경을 쓰고 뉴스 진행에 나선 것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 사회적 지지를 받았다. 그럴 정도로 여성들이 외모에 대한 압박에 강하게 반발한 한 해였다. 이영자의 수영복 차림도 외모 강박에서 벗어난 자연스럽고 당당한 태도로 인식되며 찬사가 쏟아졌다. 이영자가 몸매 관리에 전전긍긍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향유하는 것도 탈코르셋 흐름에 부합하는 태도다. 이런 것들이 그녀를 ‘멋진 언니’로 만들었다.
이런 사회적 의미 때문에 이영자, 박나래 등 여성 예능인들이 올해 연예대상 시즌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여성주의 목소리가 폭발한 해에 여성 예능인의 연예대상 수상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KBS가 이영자를 대상 수장자로 선택한 것에는 그런 사회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프로그램 속의 활약만으로만 보면 이영자가 KBS 다른 스타 예능인들에 비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이영자의 편이었다. KBS는 이영자를 선택함으로써 올해 한국사회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MBC 입장에선 힘이 빠지는 일이다. 원래 이영자가 크게 활약한 방송사는 MBC이고, 여기에선 같은 여성인 박나래도 대상 후보로 경쟁하기 때문에 MBC 연예대상에 관심이 집중 됐었다. 그런데 KBS가 선수 쳐 이영자에게 자사 연예대상 최초 여성 대상이라는 타이틀을 수여함으로서 MBC 연예대상의 김을 뺐다. 원래 MBC에서 이영자 대상 수상이 유력했는데 KBS에게 일격을 당한 터라 MBC의 선택에 관심이 모인다. 이영자와 박나래의 경합으로 보인다.
어쨌든 여성들의 경합이다. 스타MC가 주도하지 않는 관찰예능의 시대이기 때문에 연예대상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 속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것이 이영자, 박나래 수상에 대한 관심이다. 그럴 정도로 여성이 이슈의 중심에 선 것이다. 2018년 한국사회 여성주의 열풍을 연말 연예대상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